한국일보

행복한 고자질

2010-08-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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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다섯째가 안 보인다. 어디 갔을까 궁금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빼쭉 내밀었다가 엄마를 발견하곤 순식간에 자라목처럼 방안으로 사라진다.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저러고 있는지가 한 눈에 읽혀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삐친 것이다.

얼마 전 11세 생일도 지났고, 며칠 사이에 엄마보다 키가 훌쩍 커버린 딸이지만 역시 막내 맞다. 큰 아이 같으면 당장 달려가 왜 그러냐고, 엄마가 도와줄게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를 못살게 굴었을 텐데, 삐쳐서 방에 쏙 들어가버린 막내 딸이 사랑스럽기만 하니 엄마도 이젠 좀 철이 들었나보다.

조금 있으니 물어 볼 것도 없이 넷째와 여섯째가 와서 자초지종을 술술 풀어놓는다. 다른 아이들보다 감성이 풍부한 다섯째는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감동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고 삐치기도 잘한다. 그런데 본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아이의 수준에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니 나도 어찌할 수 없는 고슴도치 엄마인가 보다.


사람이 살다보면 내게 안 맞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가끔 만나는 사람이거나 스쳐지나가는 손님 같은 관계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같은 지역이나 단체에 속해 자주 만나야 되는 경우일 때는, 더구나 매일 만나는 가족인 경우엔 별 일도 아닌데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특별히 자기와 친한 사람들일수록 더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조금만 섭섭하게 해도 하루 종일 그것에 묶여 마음에 몸살이 난다. ‘왜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줄까? 난 특별히 생각해서 배려했는데 왜 그것을 고맙게 여기지 않을까?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그렇게밖에 말을 못하나? 지구를 한 바퀴 돌아도 남을 만큼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상상의 날개를 펴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날지도 못하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철없는 아이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삐치는 것은 나이에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평생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게 인생일진데 ‘어떻게 하면 좀 더 멋지고 풍성한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며 행복한 시험지에 정답을 쓰고 싶어 몸부림치곤 한다.

이 세상 65억 사람이 모두가 다른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차이를 내가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낳은 자녀들도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독특한 면이 있는 것이 매력인데, 왜 나와 다른 그 사람이 꼭 내 맘에 들어야만 직성이 풀릴까?

내 맘에 안 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기분을 조금 몰라줘도 ‘그럼 그렇지, 당연해. 그럴 수도 있어. 나도 그럴 때가 많은 걸…’ 이렇게 말해 본다면 웬만한 일에는 삐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그 사람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곤 한다.

그래도 가끔씩 이해할 수 없고, 마음이 아플 때에는 골방에 들어가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만 나의 심정을 아뢰곤 한다. ‘하나님 아시지요? 난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요. 주님이 좀 풀어주세요.’ 아무도 안 듣는 골방에서 기도했는데 어느덧 내 마음도, 상대방의 마음도 부드럽게 만져진 것을 느낀다. 그새 천사가 다녀 갔나보다. 8월인데도 시원한 가을바람이 느껴진다.


정한나/남가주광염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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