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망증과 치매

2010-08-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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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을 하면 나이드신 분들에게는 좀 외람되고 건방진 말이 될는지 모르지만, 요즘 무슨일을 하다가 깜빡 무언가를 기억에서 빼먹고 잊어버리는 일이 가끔씩 생긴다.

마켓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나올 적에 거스름돈을 받지않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때는 돈을 다 지불하고 봉지에 싸논 물건을 마켓에 그냥 놓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는 취미클럽 회원들하고 네바다주의 라플린에 2박 3일간 단체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둘째날 낮에 강가로 뱃놀이를 하려고 나가는 길에 강변에서 어디선가 한번쯤 뵌 듯한 한국인 젊은 부부와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그분들이 로스 앤젤레스에서 전에 업무관계로 만났던 고객중의 한분으로 짐작하고 얼른 반가운 듯이 인사하였다. 그들 내외도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하길래 “웬일로 여기까지 다 놀러오셨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도 강가로 바람 좀 쐬러 나왔다”고 빙긋이 눈웃음을 지으며 농담하듯이 대답하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저는 엊저녁에 여기에 도착했는데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다, 얼른 한동안 허리가 휘어지도록 깔깔거리며 웃더니 “아-니, 키 한씨! 저희들 정말로 모르세요? 우리도 키 한씨하고 같은 뻐스타고 왔잖아요?” 라며 어제 열시간 가량을 같은 뻐스를 타고 왔는데도, 내가 그들을 몰라 본 것에 대하여 서운하고 화라도 난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순간 너무 무안하고 황당해서 그만 함께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어색한 순간을 빠져 나왔었다.

또 며칠전에는 회사에서 손님이 오실 것에 대비하여 서류들을 정리하고 볼펜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 보아도 볼펜이 보이지를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방금 전에 여기서 썼는데 그 펜이 어디로 갔지?”하면서 책상서랍을 열어보고, 주머니를 뒤져보고, 또 책갈피와 서류더미들을 아무리 들쳐봐도 그 볼펜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은 점점 급해지고 두손은 부지런히 서류가방이며 필통들을 뒤적이고 있는데 “따르릉, 따르릉”하면서 탁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아이고 이 바쁜 와중에 또 전화까지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구나”하면서 얼른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갖다 대는 순간, 무언가 딱딱한 것이 귀에서 걸리며 “덜그럭!”하고 책상위로 떨어져 내렸다. “어?” 하면서 내려다 보니 볼펜이었다.

그렇게 찾고 있었던 볼펜이 귀에 꽂혀 있는 줄도 모르고 허둥대었던 생각을 하니까, 그만 맥이 탁- 풀리고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이, 어떻게 전화통화를 끝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도 고객들과의 약속이라든가 중요한 스케쥴들은 꼬박꼬박 스케쥴 목록이나 컴퓨터에 넣어 잊지않고 제때제때 맞추어 지키고 있지만, 가끔 테니스를 치고 샤워를 하기 위하여 내복이나 수건을 함께 지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만 깜박하고 잊어버리는 등, 작지만 요긴한 것들을 곧 잘 잊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아직도 한창 때인데 왜 그러느냐고 질문하실 독자분들도 계시겠지만,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기억력이 떨어져 가며 건망증이 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한 세상을 이리저리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아 가면서, 대개 지나간 추억들 중 좋은 기억들은 쉽게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했다거나 금전이나 물질 또는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며 괴롭게 했었던 나쁜 기억들은 잘 잊지않고 오래 기억하여 한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는 좋은 일은 잊지 말고 계속 기억하여 감사하고, 나빳던 기억들은 모두 속히 잊고 사는 그런 건망증에 걸렸으면 좋겠다.

한가지 여담으로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 금방 옆에 놓은 안경을 깜박 잊고 여기저기 막 찾으면 그것은 건망증,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찾은 안경을 들고서 “이게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이지?” 하고 스스로 묻게되면 그것은 치매!

(310)968-8945


키 한 / 뉴스타 부동산 토랜스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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