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자의 꽃

2010-08-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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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물안개가 연못 위로 자우룩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의 꽃대가 소리 소문도 없이 함초롬히 젖은 얼굴을 하고, 수줍은 듯 입술을 문채 하얗게 솟아 있었다. 싱그러운 아침 해가 떠오르자 물안개는 점차 사라지고 벙싯 열린 꽃봉오리의 선연한 모습이 한결 청초하다. 마치, 한 마리 학처럼 단아하고 우미하다.

꽃아, 이제 일 없느니. 너는 탈속의 숭엄한 이상을 위해 사바의 속박, 그 진창을 딛고 사무치게 가슴앓이 해 본 자 되었으니, 그만하면 됐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세상은 열리고, 너와 더불어 저마다 지극히 고운 형색을 질세라 다투어 드러낸 선우들이 연못에 한 가득이다. 법열에 겨운 그들의 소리 없는 환희와 군무가 장엄하다.

해탈의 자태는 고고하고 담백한 것. 그러나 맑고 밝은 소소한 기품과 향에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은은한 위엄이 서려 있다. 그것은 우주를 읽은 자만이 노래할 수 있는, 그의 손을 거쳐 우주가 정제되고 압축된 한 줄 위없는 선시와 같다.

그 모습을 친히 보는 자체로써, 견고한 편견과 이기적 욕망에 의해 오염되고 충혈된 눈으로 세상에 턱없이 개입하고 심판하려는 자들에게는 정화의 시은이 된다.

때로 폭 넓어 너그럽고 무던한 잎사귀 위로 번뇌 망념의 비라도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면, 구슬처럼 맺힌 빗방울들은 끝내, 잎사귀를 적시지 못하고 알알이 그대로 ‘사리’가 된다.

설렁, 바람이라도 스칠라치면 옥이 구르듯 그것들은 사바의 세계로 굴러내려, 욕진의 개펄에서 아우성치는 무리들에게 고결한 은총이 된다.

해 기웃이 서녘으로 잠기어 연밭이 저뭇해지고 연이어 교교한 달빛이 흐르면, 그 날을 충분히 산 자들은 서서히 꽃 나래를 접는다. 몸을 세운 채 꿇어앉아 합장한 꽃봉오리들, 고통 받는 자들의 해방을 위한 간절한 소망의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뭇 처염하고 경건하다. 차라리 성스럽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꽃을 ‘성자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 송나라 주돈이(1017~1037)도 연의 기품과 아름다움을 “연은 진흙에서 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깨끗이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다. 줄기의 속을 허허롭게 비우고도 겉모습은 반듯하게 서 있으며 넝쿨지지도 않고 잔가지 같은 것도 치지 않는다. 그 향기는 멀리서 맡을수록 더욱 맑으며 청정하고 깨끗한 몸가짐은 높이 우뚝 섰으니 멀리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요, 가까이서 감히 어루만지며 희롱할 수 없다”고 읊으면서 연꽃을 군자로 표현한 바 있다.

지금은 곳곳마다 연이 꽃을 피우는 맑고 환한 계절이다. 예로부터 연꽃은 불교의 정신을 잘 드러내는 꽃으로 신성하게 여겨졌다. 2,000년 전의 씨앗이 싹을 틔움으로써 그 불멸의 생명력을 보여준 바 있고, 또한 더럽고 지저분한 진흙(번뇌)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항상 고결하고 청정한 모습을 잃지 않는 처염상정의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다. 해서 연꽃은 불교의 이상적인 인격인 보살과 나아가 ‘인격의 완성’을 의미하는 붓다를 상징한다.

여시아문. 나는 이렇게 들었다. 사캬무니 붓다께서는 말씀하셨다. “물이 연잎에 붙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은 탐욕에 물들면 아니 된다.”


박 재 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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