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존의 방법

2010-08-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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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빈이라는 사람이 아내에게 줄 선물로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를 샀습니다. 점심시간에 그는 자기 친구, 시에겔에게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에겔은 “자네 그거 얼마에 샀는가?”라고 물었습니다. “500달러라네” “그것 참 마음에 드는 물건이네. 내가 700달러를 주겠네. 그러면 자네는 200달러를 남기지 않는가?” 레빈과 시에겔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져 반지는 시에겔에게 팔렸습니다. 다음날 레빈은 반지가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에겔에게 가서 800달러에 되사겠다고 제안했고, 시에겔은 반지를 레빈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순식간에 그는 100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시간이 갈수록 그 반지에 대한 애착이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시에겔은 전화를 걸어 레빈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가 그 반지를 내게 다시 판다면 내가 1,000달러를 주겠네” 그래서 레빈은 기분 좋게 다시 200달러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시에겔은 그 반지를 자기 동업자인 버만에게 보여주고 1,500달러를 불렀습니다. 반지를 본 버만이 합의해서 시에겔은 500달러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레빈이 시에겔에게 전화를 걸어 반지를 되돌려 준다면 1,200달러를 주겠다는 제의를 해 왔습니다. 시에겔은 대답했습니다. “미안하네. 나는 그것을 1,500달러에 버만에게 넘겨주었다네” 이 말을 들은 레빈이 소리쳤습니다. “자네는 바보였구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의아해진 시에겔이 물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내가 내 물건을 500달러를 남기고 판 게 잘못이란 말인가?”그러자 레빈이 탄식하듯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반지로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자네는 정녕 몰랐단 말인가?”

유대인들의 해학은 단순한 우스갯말만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에도 경제논리에 밝은 유대인들의 지혜가 번뜩이고 있습니다. 이 다이아몬드 반지라는 물질을 인간관계의 신뢰라고 보고 그것을 사회적 윤리관 위에 놓고 보면 그 숨겨진 뜻이 잘 드러납니다.


한 사람이 지켜가는 신뢰는 그것이 타인에게 번지게 되면 그것은 더 큰 믿음으로 되돌아오고 마침내 상호신뢰 사회라는 탄탄한 이상향이 건설됩니다. 그러나 그 상호 신뢰라는 것도 한 사람이 정도 이상의 욕심을 챙기면 깨어지고 맙니다. 신뢰란 그 관계의 정도에 알맞게, 그리고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레빈이 볼 때, 500달러에 반지를 팔아넘긴 시에겔은 관계의 신뢰를 지나치게 자기 위주로 획득함으로써 생계의 길을 잃었습니다.

요즘 남한과 북한을 보면서 이 탈무드의 이야기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남북한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 그리고 각종 인도적 지원으로 상호 신뢰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한 쪽이 지나치게 이 신뢰를 아전인수식으로 이용했습니다. 북한이라는 시에겔은 이상한 자존심이랄까요, 우리 식이라는 구실로 이 신뢰 관계를 어렵게 하고 일방적인 자기추구를 하였습니다. 핵무기 개발로 주변국들을 불안하게 하는가 하면, 돈을 내고 금강산 구경을 간 관광객을 쏘아 죽이고, 정당한 이유 없이 천안함에 어뢰 공격을 해 47명의 목숨을 희생시킵니다. 그 결과 남북한의 상호신뢰, ‘생존의 방법’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최근에 중국과 대만이 상호무역에서 관세를 철폐했다고 합니다. 우리보다 여건이 더 좋은 중국과 대만이 한 단계 더 다가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서로 팔고사며 무한 경쟁의 국제 사회에서 새로운 생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미 쌓은 서로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우리 남북한의 관계는 아쉽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지금이라도 굶주리는 동족을 위하여, 그리고 민족의 내일을 위하여, 대승적인 차원에서 남북한 지도자들이 진정한 신뢰를 이루어나가는 성의를 보일 수는 없는 것일까요?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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