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나 아닌 우리를 선택한다는 것

2010-07-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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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영화 중에 ‘The Family Man’이 있습니다. 한인 아내와 결혼한 후 한국인들에게 ‘케서방’으로 불리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인공 잭 캠벨을 연기하고, ‘Spanglish’에서 덤벙대는 안주인 연기로 인상 깊었던 티아 레오니가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인이자 아내인 케이트 레이놀즈로 출연하는 영화입니다.

“13년 전 연인 케이트와의 약속을 뒤로 한 채 성공만을 향해 달려온 월스트릿의 벤처 기업가인 잭 캠벨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들른 식료품 가게에서 정체불명의 한 부랑아를 만난 후 현실과는 다른, 즉 케이트와의 결혼을 선택했을 때의 인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뉴욕의 호화 아파트에 귀가해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 들었던 그는 캐롤 소리에 깨어나면서, 뉴저지 한 작은 마을에서 옛날 애인이었던 케이트와 결혼해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인정 못해 뉴욕의 아파트와 회사를 찾아가지만 문전박대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새롭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입니다.

타이어 가게 샐러리맨으로서, 아내와 가사 일을 분담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면서 케이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두 자녀들을 통해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부성애도 깨달아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양면성도 지니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 들른 월스트릿의 거물 기업가의 눈에 띄게 된 잭은 그의 회사 중역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고 화려한 뉴욕의 삶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러나 현재의 소박하지만 단란한 삶을 놓고 싶지 않은 아내 케이트와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 그는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서, 다시 자신의 현실로 돌아옵니다. 꿈을 꾼 것이었습니다. 결국 커리어 우먼으로 살고 있는 옛사랑 케이트를 찾아 나서게 되고, 파리로 영구 이주하기 위해 공항 대합실을 빠져나가는 케이트를 붙잡아 새 인생을 설계하는 첫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영화가 만들어낸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잭과 갈등을 겪던 케이트가 어느 날 아침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런 얘기를 합니다. “잭, 나는 항상 이런 꿈을 꾸어왔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우리는 아이들과의 추억이 가득한 이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고 머리는 은발로 변했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지만 집에 찾아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데크를 새롭게 칠하고 있는 행복한 우리의 모습을 말이야. 이게 내겐 정말 중요한 일이지. 그러나 내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잭, 당신이야. 당신이 정말 원한다면 나는 이 집을 떠나 뉴욕으로 갈 수 있어. 당신과 함께하는 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지. 나는, 내가 아닌 우리를 선택하겠어(I choose us).”

케이트의 이 고백을 들으며 딸들에게 ‘눈물의 대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나는 또 눈을 비비며 부리나케 눈물을 감추어야만 했습니다. 오래 산 부부 간에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갈등은 대부분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나를 선택하는 습관 때문입니다. 남들한테는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으로 소개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자신이 중요할 뿐입니다. 조금이라도 ‘우리’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 카테고리 안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함께 담아 두고 있다면,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아닌 우리를 선택한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쉽지만 우리가 까맣게 잊고 살아 온 행복의 열쇠입니다.

이 영화를 본 이후로 저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이 말을 20여년을 함께 살고 있는 집사람에게 폼나게 써먹을 기회 말입니다. “I’ll choose us!”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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