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 스피드 티켓

2010-07-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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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캘리포니아 하이웨이에서 스피드 티켓을 받았다. 75마일로 달렸으니 10마일 오버라고 했다. 요즘 단속이 강화되었다더니 과연! 멀리 차 한 대가 서있는 것을 보았지만 패트롤 카인 줄 몰랐다. 지붕에 라이트도 없고 완전 흰색이었으니까. 젊은 경관이 말했다.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법정으로 나오시오.” 관할 법정은 새크라멘토에 있다고 했다. LA에서 그곳까지? 됐네, 이 사람아! 속으로 투덜거렸다.

벌점을 피하려면 운전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 어느 저녁, 종일 환자를 보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갔더니 남녀노소… 나 같은 학생들이 많이도 모였다. 모두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라고 하소연이다. 강사가 나와서 말한다. 여러분은 1만5,000번째 운전자이십니다. 차량 1만5,000대 중에 1대 꼴로 티켓을 받는다는 뜻이란다.

각자 자기 사연을 말하는 시간이다. “빨간 불에서 우회전을 하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건너는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었다니까요. 그래서 슬금슬금 도는데…” 강사가 말허리를 자르며 지적했다. “위반입니다. 하나, 둘, 셋… 완전히 멈추었다가 가야 합니다.”


또 다른 부인이 말한다. “프리웨이를 달리는데요, 앞에서 경찰 차 두 대가 지그재그로 운전을 하면서 길을 막더라고요.” 강사가 설명한다. “아, 네! 프리웨이를 달리는 차들의 흐름이 전체적으로 너무 빠르다 싶으면 안전상 조금씩 천천히 가도록 늦춰주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인은 그 경찰 차량 바로 뒤를 따라가는 첫 번째 운전자였는데 앞에서 경찰관이 차창 밖으로 팔을 내밀더니 마구 손짓을 하더라나. “날더러 따라 오라는 건 줄 알았지 뭐에요. 그래서 열심히 그 경찰차를 따라서 나도 지그재그로 계속….”

또 한 학생은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노란불에 그냥 달렸다가 카메라에 찍히는 바람에 3개월 후 날아온 티켓을 들고 왔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우겨야지 했는데 증거 사진을 열어보고는 포기했다. 사진에 나온 얼굴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게끔 확실한 자기 얼굴이더라는 것이다. 카메라 한 대 값이 수십만달러라더니 정말 성능이 놀랍더라고 그는 감탄을 했다.

어떤 사람은 4웨이 스탑을 안 지켜서, 어떤 사람은 안 되는 시간에 좌회전을 하다가, 어떤 사람은 횡단보도에 보행인이 끝까지 다 건너가지 않았는데 차를 움직이다가… 등등 사연이 다양했다.

가까운 목사님 한 분이 내 얘기를 듣더니 웃으며 “그냥 감사하세요.” 하고 말한다. 일상의 작은 일들은 대부분 큰 일의 경고사인일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그 일로 앞으로 더 조심하게 되고 지키라는 대로 지키는 것이 안전하며 마음도 편하고 또한 ‘그분’께서 이르고 싶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더 잘 들을 수 있고…”가 그분의 조언이다.

오늘도 새벽 예배에 나가 앉아 하루를 시작한다. 마음을 정리하고 계획하고 그날 하루에 예정된 환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기도한다. 터무니없이 불평하는 환자를 만나도 주님이 나의 입술보다 앞서 말씀하시고, 치료를 할 때마다 주님이 나의 두 손보다 앞서 일하시기 원한다고 기도한다. 그러고도 돌아서면 나는 일상에서 늘 그분보다 앞장선다. 내 고집을 내세운 오버 스피드다. 지름길로만 골라서 속도 표지판도 쳐다보지 않고 살아온 날. 주님을 앞지른 스피드 티켓을 다 모으면, 아마 나는 이미 죽고 또 죽었을 것 같다.


김 범 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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