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 기도하라

2010-07-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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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버리나니 큰 기쁨 오나라.’ 절집의 해우소에 들리면 가끔 볼 수 있는 글귀다.

해우소(解憂所)는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찰의 뒷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급한 볼일을 상큼하게 봄으로써 근심을 들어내듯, 번뇌 망상도 함께 버리자는 뜻이 담겨 있다.

세상 근심 중에 화급하기로 안달난 뒤를 봐야할 근심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 아뜩한 근심을 풀어내면서 맛보는 가물가물한 쾌미와 잦아드는 안온은 이루 형언키 어렵다.


그 맛을 일러 해탈미(味)라 한다면 불손 무례가 되겠지?
전해오는 여러 통설들이 있지만, 해우소라는 이름은 근세 최고의 선지식인 경봉(1892-1982)스님께서 지으셨다고 한다. 스님은 한국동란이 끝날 무렵 머물고 계시던 통도사 극락암 뒷간의 이름을 새로 지으셨는데. 뒤를 보는 곳은 ‘버리고 버리나니 큰 기쁨 오나라’ 하는 뜻에서 해우소라 지어시고, 소피를 보는 곳은 ‘일없이 바쁜 몸 쉬었다 가라’는 뜻으로 휴급소(休急所)라 지어셨다고 한다. 스님의 격조 높은 멋과 해학을 엿볼 수가 있다.

한국 사찰들 중에서 전라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순천의 선암사 해우소는 가장 크고 오래된 곳으로, 근래 짓고 있는 절집 해우소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선암사 해우소에 들렀다가 그 아름다움에 취해, 그 길로 바로 가출(?)해 버렸다는 스님도 있다.

특히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선암사’의 들목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고 했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도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고 청한 바 있다.

고래로 부엌과 더불어 뒷간은 숱한 조선의 아낙들이 고추 당초보다 맵다는 시집살이의 설움과 한을 남몰래 풀어놓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해우소는 만리장성을 쌓았다 허물기를 수십 번 반복하는 곳이기도 하며, 인간사 다방면에서 일세를 풍미한 걸출한 영감과 명작들이 무수히 솟아난 ‘나’만의 우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절집의 해우소는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고 하나 되는 열린 공간이다. 최근에는 칸마다 문짝을 달기도 하지만, 해우소의 본꼴을 지켜가려는 사찰에서는 일부러 문짝을 달지 않는다고 한다.

고즈넉한 산사의 해우소에서 처연한 풍경소리와 한가로운 물소리, 청아한 산새소리를 스치는 솔바람 편에 전해 들으며, 차별 경계를 잊은 그 ‘문 없는 문’을 통해, 눈 들어 구름에 흐르는 이지러진 낮달 한번 우러르고 용 한번 쓰고 첩첩 청산 보노라면, 나 스스로 그것 되고 그것 스스로 내가 된다.

강원도 오대산 자락 ‘쯔데기’골에 터 잡은, 이제는 그 ‘무소유의 소유’로부터도 영원히 해방되신 법정 스님의 오두막에도, 예의 토담과 나무껍질로 이엉을 얹은 소박한 해우소가 있다. 그곳을 들자면 흙벽에 걸려 있는 손바닥 만한 널빤지 위로 이런 글귀가 먼저 눈에 뛴다. 옛말 체의 토막글로 군말 붙이건대, 무소유의 참된 의미가 마음의 ‘맑은 가난’임을 알아채게 하시려는 스님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마음에 담아둔 불필요한 것들, 번뇌는 아래로 떨어지고 그대 가벼워지리니, “기도하라”


박재욱 /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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