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6.25, 그 폭력의 상처

2010-06-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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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사변이 발발한지 이제 60년이 되었습니다. 6,25를 직접 체험한 세대들은 이미 세상을 하직했거나 모두 노령기에 있습니다. 6.25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필자도 그 세대에 속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6.25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그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한 셈이지만, 세월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기억마저 바꿀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아니 어쩌면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이란 더 생생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라는 폭력이 남기는 것은 파괴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이론으로도 전쟁은 정당화되거나 미화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6.25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전쟁의 피해는 참혹했습니다. 한국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6.26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남한에서만 군인 13만7,000여명이 죽었고, 45만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3만2,000여명이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17개국 우방의 군인들도 미국의 3만7,000명을 포함해서 총 4만여명이 죽었고, 10만4,000여명이 부상, 9,000여명이 실종되어 내외의 군인 총 77만6,000여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북한 측의 피해는 더 많았습니다. 북한군 80만1,000여명, 중공군 123만4,000여명으로 총 203만5,000여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남북한 양측의 군인 피해는 총 322만여명에 달했습니다.

민간인 피해는 더 극심했습니다. 남한에서는 사망, 부상, 납치, 행방불명 등으로, 총 99만여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북한 민간인 피해도 150만명에 이르러 남북한 민간인 희생자 수가 총 249만여명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1952년 3월15일까지 발생한 군관민의 희생까지 합치면 그 전체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절반 이상이 희생된 셈입니다. 따라서 6.25의 피해를 입지 않은 가족이 없었으며 지금도 죽음과 생이별 등의 사연으로 수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어찌 6.25를 잊을 수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우리 겨레는 그 전쟁의 이유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10여년간 우리 고국의 현실은 걱정스럽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이 교육 일선에서 6.25를 남한의 북침이라고 공공연하게 가르쳐 북한의 억지주장이 어린이들에게 주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6.25 체험 세대도 아닌 그들이 엄연한 전쟁의 진실을 왜곡해 가르치고, 6.25가 부패한 남한과 침략근성을 가진 미국이 도발한 북침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생겨나고 있다니 경악스럽습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 오히려 멀리 내다보면 전교조의 이런 기만적인 행위가 결국은 더 큰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또 한편으로는 최근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은 위협적인 성명을 쏟아내다가 최근에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호전적인 성명들을 보면서 6.25 당시나 지금이나 북한 당국의 폭력성은 변함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북한 당국이 최근에 국민들에게 주는 모든 배급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감당하기 힘든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호전적 자세로 일관하는 북한 당국과 그 아래에서 북한 동포들이 겪는 굶주림과 고통을 보는 우리 마음은 착잡합니다. 누구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로 북한 동포들이 겪는 그 고통! 우리가 같은 동족으로서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여기서 찾게 됩니다. 6.25! 그 아프고 쓰라린 기억과 내 동족들에 대한 걱정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6.25 세대들에게 마음의 내출혈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깊은 상처입니다.


송순태 /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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