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 세일(Sale)

2010-06-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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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고객의 중고품 세일을 둘러봤다.

미국에서 사십년 이상 사시다가 노후에 다시 고국 땅을 밟으시겠다며 모든 것을 정리하는 분이다.

물건 하나하나에 이민 온 역사의 흔적이 구석구석 묻어났다. 어릴 때 봤던 자개로 수놓은 비누곽이며 신랑각시 인형들로 진열된 차고가 마치 인사동 골동품 가게처럼 보였다.


차고를 가득 메운 우리나라 전통이 담긴 열쇠고리와 서로 다른 모습의 탈바가지를 보니 어릴 적 추억이 소록소록 피어 난다.

유학생으로 미국 와서 온갖 풍상 다 겪고 이제 모든 것을 누리고 삶을 관조하는 때에 다시 보따리를 쌀 수 있는 끈끈한 조국애가 순간 부러웠다.

구구절절 사연은 많겠지만 이제 고국에서 살았던 세월보다 더 길게 산 이민생활의 모든 걸 접을 수 있는 그 용기에 갈채가 나온다.

최근 스포츠로 인해 한국이 많이 부상을 한 연유인지 타인종들이 계속 줄이어 사가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신명난다.

단돈 1달러에 주인의 손끝에 오래 담긴 추억거리가 오늘부터는 어느 이웃의 벽에 예쁘게 장식돼 또 다른 추억을 만들 것을 생각하니 흐뭇해진다.

그저 버려도 될 만한 물건들을 작은 돈으로나마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마음이 고마워 연신 다른 것을 덤으로 퍼주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생각 하나를 바꾸면 참 자유롭고 편안할 수 있는데 살다보면 자신의 틀을 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갈수록 더욱 어렵다고 하나보다.

세월이 자신을 더 견고하게 하니까 말이다.

지난 달 사랑하는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신 후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됐다.
언제나 자신을 들들 볶으며 모든 일에 정상에 오르고 지키려 앞만 보고 산 세월들 속에 자신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곱씹어 보다 두 손을 펴보니 남겨진 게 없다.

그저 쉬어 가며 해도 될 것을 일정한 틀을 정해놓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이는 것만 보고 산 삶에 회한이 머문다.

사는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감정과 고난까지도 내게서 떨어뜨려 놓고 보는 여유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행복과 불행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데 이기적인 우리는 불행만 오래도록 기억하는 습관이 있어 늘 행복 찾기에 급급했던 자화상이 어리석게만 보인다.

모든 것을 떨어뜨려 놓고 보니 내 주변에 놓여진 소소한 것에 감사하게 된다.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로부터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격려의 편지들에 담긴 정성에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는 힘을 얻었다.

바쁜 일정 뒤로 하고 교대로 불러내어 점심사고 드라이브 시켜주는 동료들의 우정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다시 배운다.

잘 산다는 게 나만이 우뚝 서서 혼자만 맘껏 누리는 것이 아니고 갖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누고 베푸는 그 모습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지닌 작은 사랑을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우리를 덜 외롭게 한다.

오늘 한 번 그간 쓰지도 않으면서 이사할 때마다 끌고 다니는 물건들은 없는지 둘러보고 창고 세일을 해 보자.

내 추억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지켜주며 기뻐하는 모습이 내겐 또 다른 행복이 될 수 있으니까.

나이가 들면 소박해지면서 행복을 느낀다는 덕담이 오늘따라 두 귀에 쏘옥 들어온다.
(562)304-3993


카니 정 /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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