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 심베리 섬의 축제

2010-06-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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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는 하루 한차례 소나기가 내린다. 종일 무더운 날씨로 땀이 흐를 때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면 신이 난다. LA에서 사흘 길.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다시 경비행기로, 마지막에 작은 배로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부족 인구 5,000명 남짓한 작은 섬 심베리이다. 사람들은 마치 석기시대 처럼 살아간다. 바퀴 달린 물건이 거의 없다.

심베리 섬의 축제! 성경번역 위클리프 선교회 소속의 한인 홍성호, 현숙 선교사의 지난 24년 노력이 결실을 맺는 역사적 순간이다. 부족어인 만다라어로 마침내 신약성서의 번역이 이루어졌다. 오늘은 봉헌식이 열리는 날이다.

저만치서 여러 척의 배가 해안으로 다가온다. 배 안에는 인근 섬 주민과, 춤을 추게 될 부족대표들, 추장들이 만다라어로 인쇄된 신약성경 2,000권을 싣고 오는 것이다. 마을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과 위클리프 본부에서 나온 축하사절, 호주, 미국, 한국 등지에서 찾아온 축하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배를 맞이한다.


이제 홍 선교사 부부와 추장 세 명이 두 손으로 만다라어 성경책을 높이 들어 올린 모습으로 한 발짝씩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홍 선교사 내외는 글이 없던 심베리 부족에게 글을 만들어 주었다. 글이 만들어지자 성경이 번역되고 초등학교가 생겼다. 마을이 변했으며 사람들은 선교사가 가르쳐준 만다라어 글씨로 찬송가를 부른다.

선교본부에서도 뜻깊은 날을 맞아 20명의 손님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우리를 실어 나른 비행기 조종 선교사, 크리스는 이같은 봉헌식 참석이 30번째라며 감격한다. 그가 본 봉헌식은 그야말로 다양한 여러 부족 가운데 열렸던 것들이다. 말이 달랐고 문화와 풍습이 달랐지만 증인이 되었던 봉헌식에서는 한결같이 찬양이 울려퍼졌고 각 부족어로 성경이 읽혀졌다.

이어진 축하공연으로 원주민 뱀부 악단의 찬양 연주가 시작되었다. 커다란 대나무를 통으로 길게 잘라 열 개 정도씩 묶어서 만든 이들의 고유 악기, 뱀부 밴드는 속이 빈 대나무 통을 신발짝처럼 생긴 물건으로 세게, 약하게 때릴 때마다 높낮이가 다른 음이 만들어지는데 여럿이 연주를 하면 울림이 강하고 화음은 아름답다.

우리 팀도 한낮의 더위를 씻기는 소나기가 지나간 후, 봉헌식에 참석하기 위해 남녀 모두 홑겹 치마를 갈아입었다. 봉헌식이 절정에 이르러 다들 한 목소리로 찬송을 불렀다. 심베리 주민은 만다라어로, 미국인들은 영어로, 우리 팀은 한국어로, 소리 높여 같은 찬양을 불렀다. 피부가 검은 이곳 주민들은 머리에 온갖 깃털 장식을 하거나 나무 가지와 이파리로 치장을 하고 모두 나와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심베리 추장은 이날 홍 선교사에게 명예 추장 지위를 주었다. 이 섬의 땅을 소유할 권리, 이 땅에서 죽고 묻힐 수 있는 권리를 함께 받았다. 미항공사 엔지니어라는 편한 삶을 마다하고 그는 31세에 이곳에 처음 들어와 이제 쉰 중반이 되었다. 이 봉헌식이 끝나고 나면 홍 선교사는 헌신된 세월의 열매를 뒤로 하고 아직 글이 없는 5시간 거리의 이웃 섬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이곳에서 만난 선교사들은 대부분 전문직과 풍요한 삶을 한낱 이슬처럼 여기며 뒤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께 받은 소명에 따라 지금의 자리를 감사하며 산다. 그리고 말한다. “물질이 보장된 삶을 떠나 불편하냐구요? 아니오. 하나님과의 동행은 특권입니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선교사의 삶, 그러나 하늘의 문이 열리는 비밀을 맛보는 사람들, 나는 이들이 누리는 ‘특권’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다 믿는다.


김범수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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