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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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환절기

2010-06-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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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부산 피난학교에 미국에서 위문 상자가 왔다. 그 속에는 학용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린이들이 제일 좋아한 것은 연필이었다. 매끈한 노란 몸통에 지우개까지 달려있어 사용하기 편리하였다. 그 전에도 연필이 있었지만 미국 제품은 촉감이 달랐다. 학생들은 글씨 쓰기에 적당한 HB를 특별히 좋아하였다. 시간이 흘러간 요즈음은 글씨를 손으로 쓰는 시대가 아니고, 식자판을 손가락으로 치는 시대가 되었다. 연필이 갈 곳은 어디인가.

1566년 영국에서 나무 사이에 흑연을 끼워 쓴 것이 연필의 시초라고 한다. 1875년 연필 끝에 지우개를 달아 발명품으로 특허를 신청한 미국인은, 이미 있던 연필과 지우개를 합친데 불과하다는 판결을 받았다나. 이처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포함해 연필은 필기도구로 사랑을 받고 있다.


‘남한산성’을 쓴 김 훈 작가는 원고지에 연필로 또박또박 글을 쓴다고 알려졌다. 그를 본뜬 것이 아니지만 필자도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연필을 여러 자루 깎아서 늘어놓으면 부자가 된 듯 충족감을 느낀다. 또 셀폰 대신 한길의 공중전화를 애용한다. 이런 사람들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가.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그 무렵을 환절기라고 한다. 생활 문화가 바뀌는 현상을 전환기라고 하겠지만, 그 현상이 마치 환절기와 비슷하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여름옷이나 겹옷이 보이고, 반바지나 긴 바지가 보이고, 민소매와 코트가 섞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변하는 시대를 빠른 걸음이나, 뜀박질이나, 교통기관을 이용하거나, 인터넷으로 앞서가야 삶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슬렁어슬렁 뒤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아예 딴 길로 간다. 삶의 넓은 길만큼 각자의 개성이 만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을까. 거의 없을 것 같다.앞서가는 사람의 심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이 자신 속에 내재하는 능력을 개발한다고 믿는 것이다. 삶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뒤에서 서둘지 않고 따라가는 사람들의 믿음도 있다. 어차피 달라질 세상은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 현재를 좀 더 즐기자. 마음과 몸에 익숙한 삶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자. 모든 변화는 유익하고, 인류는 점점 발전한다는 가설이 옳은 지를 생각하기 위해 머무적거리는 시간의 여유를 달라.

인류 역사 1500년 전후의 발달 속력이 아주 다르다고 한다. 그 이후의 발달 속력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의 눈부신 상태를 나타낸다는 이야기다. 어제의 셀폰, 인터넷 사용 영역, PC의 발달 등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다. 종이신문, 종이책, 연필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염려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생활문화와 정신문화는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일까. 그렇다면 영향의 정도는 얼마나 될까. 최신 셀폰을 사용하면서 마음에 자물쇠를 채운 사람이 있다. 옛 가구나 생활 용품을 사용하지만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사람도 있다. 되는대로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정신문화와 생활문화의 연관성은 어느 정도일까.

21세기는 마음을 여는 것이 특색인 것 같다. 사람들이 거의 자유로 세계를 드나들며 생활권을 정한다. 피부색에 관계없이 친구를 사귀고 있다. 세계의 나라들은 제각기 생활용품을 사고 판다. 매스미디어들은 나라 안팎의 뉴스를 교환한다. 인터넷은 나라, 인종을 초월한 소통 매체이다. 이 문화의 환절기에 개인이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세계를 헤매다가 길을 잃지 않는 일이다. 혼자만의 갇힌 세상에 머물지 않고 창문을 활짝 열고 21세기의 공기를 마실 것이다. 그러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기쁨을 느낄 것이다. 선택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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