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자리 채우기

2010-06-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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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버이날 전혀 예상치 못한 친정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엄마를 위한 기도를 준비하며 예배 보러 가던 중 믿기지 않는 전화소리에 온 몸의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다.

호흡과 생각이 덩달아 멈췄다.


‘잘 못 들었겠지’ 하며 실감을 못해 평상시처럼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야
가 순식간에 뿌옇게 흐려진다.

늘 드라마에서나 봐 왔던 그 상황이 이제 내 앞에 놓여졌다.

당황스럽고 손발이 떨려온다.

돌아오는 여름방학 때 그 보고싶어 하시는 아들 녀석과 함께 서울에 다녀오려 했는데 뭐가 그리 급하신 지 서둘러 가셨다.

형제도 없이 달랑 딸자식 하나 애지중지 키우셨는데 조금 더 자리 잡으면 자주 찾아뵙겠다고 시간만 벌던 자신이 한없이 미워진다.

얼마나 대단한 영욕을 얻겠다고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일매일 쩔쩔매며 여유 없이 살던 모습이 순간 부질없게 보였다.

비행기 좌석도 없어 대기자로 기다렸다가 겨우 껴 가면서도 마지막이 아니길 기대했었다.


겨우 열 몇 시간 그렇게 비행기만 타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틀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 온 삶에 회한이 머문다.

지병도 없으셨기에 너무도 고운 모습으로 웃으시는 영정 사진이 한없이 낯설기만 했다.

워낙 소외된 사람들 돌보기를 좋아하신 성격에 마지막 떠나시는 길은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그렇게 고이 가셨다.

애닯고 애통한 건 이제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엄마와 하나 밖에 없는 딸은 서로 마음 써 주느라 늘 잘 사는 척 아무 고민 없는 척, 건강한 척 그렇게 오랜 세월 살아왔다.

지난 해 부터 건강이 썩 좋지 않으셨는데도 혹시 딸이 걱정할까 해서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는 말에 참았던 오열이 터진다.

내 자신 또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면 혹여 아파하실까 이것저것 삭히면서 엄마로 인해 더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나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없어졌다.

딸에게 엄마란 존재는 평생 마음의 고향이고 텃밭인데 이제 어떤 힘으로 버텨갈 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생전에 한번이라도 더 만나 보는 게 효도라는 말을 이제야 절실히 깨닫는다.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그 당연한 말들을 내 경우가 아닌 양 제쳐놓은 경솔함이 한스럽다.


엄마는 가셨다.

늘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신 소원으로 이제 슬픔에서 벗어나 자연스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분이 원하는 것임을 잘 알기에 애써 덤덤해지려 노력한다.

가슴이 텅 비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

큰 일 겪은 후 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문다.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는 그들을 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참사랑을 배운다.

사랑받기에만 익숙한 자신에게 엄마의 부재는 많은 숙제를 안긴다.

살아계실 제 맘껏 효도를 다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란 그저 살아계신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큰 힘을 받을 수 있는 건지 뒤늦게 깨닫는다.

엄마 떠난 빈자리가 주위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보석으로 서서히 채워진다.

두고두고 갚아야 할 사랑의 빚이다.


(562)304-3993

카니 정 /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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