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백이 대화로

2010-05-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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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요즈음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셀폰을 귀에 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독백이 아닌 대화의 장면이지만 그 상대를 볼 수 없을 뿐이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은 즐겁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은 생각이나 느낌의 교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없지만 꼭 말하고 싶을 때는 별수 없이 독백이라도 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학생들은 한국말로 대화하는 일을 무척 힘들어한다. 이유는 그 느낌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하는 스피치에 자신이 있는 경우도 대화할 때는 머뭇거린다. 이런 경향이 매년 열리는 ‘어린이 예술제’에 여실히 반영된다. 예를 들면 20가지에 가까운 출연 종목 중에 연극은 하나 아니면 두 가지 뿐이었다. 그런데 올해 24회 공연에 이변이 생겼다. 15가지 종목 중 다섯 가지 연극이 등장한 것이다. 놀라운 도약이다. 연극은 보는 사람이 즐기는 이상으로, 이것을 꾸미거나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종합 예술이다.


그러나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아예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이번에 여러 학교가 용기를 내어 큰 발전을 보였다. 연극은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말을 주고 받으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한다. 어른들의 연극이거나 어린이 연극에는 보일락 말락하게 어떤 교훈을 버무린다. 이에 따라 전래동화를 극화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권선징악적이 된다. 이번에 공연한 연극들은 거의 다 전래동화를 현대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는 현명함이 돋보였다. 연극에 출연한 학생들은 자기가 맡았던 대사를 오래 기억하며, 그 뜻을 잘 소화할 것이다. 그래서 대화를 주로 하는 연극 활동이 언어습득에 매우 효과적이다.

부모나 교사가 자녀나 학생에게 주는 말 대부분이 지시하거나, 야단치거나, 가르치려는 일방적인 경향이 있다. 이런 말들은 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한편 자녀나 학생들의 어색한 한국말 표현도 그대로는 대화가 어렵다. 이런 환경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우리에게는 대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하나의 걸림돌도 재미있게 이용하면 더 좋은 연습 자료가 된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현황을 말한다. 첫째, 가정이나 학교를 연극 공연 장소로 바꾸는 것이다. ‘엄마, 배고파요’ ‘10분만 기다리세요. 그 동안 테이블에 수저를 놓으세요’ ‘오케이’ 이런 대화를 거듭하면서 연극을 꾸미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선생님, 숙제 여기 있어요’ ‘착한 어린이, 고마워요’ ‘선생님, 숙제 잊어버렸어요’ ‘저런! 내일 가져오세요’ ‘예’ ‘숙제 꼭 가지고 오세요, 약속’ ‘네, 약속.’ 이것도 재미있는 연극이 아닌가. 대화 연습을 시킬 때, 같은 말, 비슷한 말 연습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라는 요구는 그들이 짜증내기에 십상이다. 둘째, 기본어에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연습하면 효과적이다. ‘보고 싶어요’를 연습하기 위해 매번 무엇이 보고 싶은지 말을 보태라고 요구한다. 말을 배우는 사람은 생각하면서 새 말 법을 익히게 된다. ‘강아지 보고싶어요’ ‘흥부 보고싶어요’ 등.

셋째, 부모나 교사들이 연극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바란다. ‘오늘은 내가 학생, 네가 선생님’ ‘’내일은 네가 아빠, 내가 아들’ 이렇게 되면 식탁에서의 4,5분도 즐거운 연극 무대가 된다. 이런 모든 제안은 재미있게 말을 주고받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은 까닭이다. 넷째, 대화하는 모습을 발표하도록 기회를 준다. 이 지역에 수많은 컨테스트가 있지만, 아직 아동극 경연대회는 없는 줄 안다. 이곳 저곳에서 동극하는 단체가 많아지면 경연대회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전통 민속 예술에 탈춤 등의 연극 활동이 있음은 우리의 자랑이 아닌가. 우리의 DNA는 이를 증명한다. 연극은 독백이 아닌 대화의 예술이다. 대화는 마음의 교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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