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스와 미국

2010-05-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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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발칸반도남단 지중해 연안 풍광명미하고 기후 쾌적한 땅 그리스. 일찍이 찬란한 서양문화의 발상지였던 이 나라가 요즘 나라빚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도 1997년 외채위기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이르렀던 쓰라린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가 내일의 미국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현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공화당 보수세력과 추종하는 논객들의 주장이다.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고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교수이며 뉴욕타임즈 고정논객인 폴 크루그만은
지난 14일자 뉴욕타임즈에 “우리는 그리스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에서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과 사회안전망 확충정책을 파탄내려고 안달이 나있는 사람들이 그리스에서 불어오는 메시지에 요즘 행복에 겨워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도 의료보험을 전국민에게 확대하고 소셜시큐리티에 돈을 펑펑 쓰다가는 그리스꼴 난다는 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두 나라가 근년에 GDP대비 엄청난 규모의 적자예산을 집행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시장이 그들을 매우 다르게 대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채권의 이자가 그리스는 9%이상으로 미국의 2배를 넘는다. 투자가들은 그리스가 언제 파산할지 모른다는 위험을 안고있어 높은이자를 보장하지 않으면 그리스 공채를 사지 않는다. 미국의 이자는 싸다. 그는 부유층 감세로 재정작자를 심화시키고 해외단기차입으로 돈을 물쓰듯 하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것 없다고 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은 분명히 지금 경제회복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고 그리스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전 국토가 경치좋은 관광명소이며 옛 헬레니즘 문화유산이 널려있는 이 땅에는 사철 온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관광, 해운, 조선업, 올리브 산업으로 잘 나가던 시절, 그리스에는 외국자본도 넉넉했다. 그런데 글로벌 경제침체를 맞아 수년간 지속된 데플레이션으로 경제는 제로성장이 지속되었고 소비확대를 위해 부유층 감세정책을 펴면서 나라재정은 적자로 돌아서고 그 폭은 커져갔다. 전국민의 의료보험, 조기은퇴 평생연금보장 등등 막대한 재정지출로 국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유럽연합 가입멤버로 유로화를 쓰고 있기 때문에 평가절하 등 통화정책으로 위기를 벗어날 방도도 없다.

미국은 오랜 진통을 거쳐 의료개혁이 입법화되었고 이를 집행하게 되면 또 경제성장을 견인하여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재원이 필요하다. 증세를 통한 건전재정의 회복은 필수적이다. 부유층의 조세저항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이나 기업도 그렇지만 정부도 때로는 세금보다는 빚을 내서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수익이 생기는 투자가 그것이다. 돈벌이가 되는 곳에 투자를 해서 그 수익으로 원리금을 갚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예컨대 도시의 상수도사업. 발전소 등등 금방 수익이 나는 것은 민간기업의 몫이지만 장기투자를 요하는 대규모 사업은 국가가 채권을 발행, 빚을 내서 한다. 이런 장기투자사업은 그 혜택이 미래세대에게 돌아가게 되니 장기 국공채는 다음세대와 원리금 상환을 나누게 된다. 국가채무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이밖에도 있다. 불황극복을 위해 정부가 빚을 얻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거시경제목표를 추진한다. 고용을 확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며 국제수지균형 등을 위해 정부는 경제주체로서 시장에 개입한다. 그리스 사태는 우리에게 교훈은 되지만 지나친 걱정은 정치적 동기가 부추기고 있다. 크루그만은 학자적 양심과 해박한 지식으로 역사의 전진을 멈춰세워 보려는 세력의 역설을 그때마다 논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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