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한 한인목회자의 외침

2010-05-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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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경제가 너무 어렵다 보니 모두가 나 살자고 남 돌아볼 틈이나 여유가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적지않은 한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이들이 따뜻한 보살핌이나 보호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에 한 한인목회자가 전화로 들려준 사연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목회자에 따르면 현재 불우한 입장에 처한 한인들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한테 도움을 요청해온 한인들을 보면 꽤 많을 것으로 본다며 한인교계가 적극 나서 이들을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회자가 접한 불우한인들의 예를 들면 모두가 어려워 이들을 돕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다.

한 남성은 어려운 경제난에 힘겨워 하던중 딸까지 잃고 나니 마음붙일 데가 없어 알콜중독자가 돼버렸다. 끝내는 가정이 풍비박산나고 오갈 데도 없는 처지가 돼 약을 먹고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즈음, 이 목회자를 만나게 됐다는 것. 또 한 남성은 가파른 이민생활에 가정불화까지 겹치면서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 면도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가 병원에 실려가 회복됐다고 한다. 또 한 여성은 동족에게 배신당하면서 자신의 모든 삶이 엉망진창이 돼 칼로 자기 몸을 자해했다가 발견돼 목숨을 부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어려운 한인들이 이처럼 여기 저기 많을 것이다. 이들을 곳곳에 산재한 한인교회들이 어떻게든 찾아서 도와야 한다는 게 이 목회자의 설명이다. 한인커뮤니티는 때대로 어려운 한인들을 돕는다고 여러 단체들과 교계에서 앞장서 구호활동을 하기는 하는데 대부분이 이름만 거창할 뿐 단발행사로 그치고 마는게 고작이다. 뉴욕 메트로폴
리탄 일대에 거의 1천개에 육박한다는 그 수많은 크고 작은 규모의 한인교회들은 다 무얼 하고 있는지… 이웃사랑을 외면한 채 잠자고 있다면 교계가 정말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요즘 한인교회들은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해외선교에 많이 눈을 돌리고 있다. 교회가 우선 커뮤니티에서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살기가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을 만큼 어려운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다면 좀 생각해볼 문제이다. 눈앞에 죽어가고 있는 동족들이 있는데 멀리 있는 선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면 그건 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우선 내 주위에 있는 동족을 구하고 난 뒤 해외선교든 구호활동이든 해야 하는 게 순서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형교회일수록 더 해외선교를 적극적으로 하는데 이들 교회는 현지에서 모은 헌금중 적지 않은 금액을 해외로 내보내 선교활동에 쓰고 있다. 그중 어떤 교회는 해외선교를 위해 백만 달러 규모로 선교지에 성전을 짓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정작 도움을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할 눈앞의 어려운 동족은 찬밥이 되는 것이다. 위안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냉대를 받고 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교회들이 어려운 교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다 보니 이들이 교회를 찾아갔다가 도리어 실망하고 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세계선교를 위해 희랍이나 소아시아 등 여러 곳을 다녔다. 그러면서도 그의 동족 사랑은 얼마나 뜨거웠는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라고 까지 말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이웃사랑의 정신이 아니던가. 요즘 한인 교회상은 너무나도 살찌고 부유한 것만을 추구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교회에서 대우받고 다니려면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상당수의 교회들이 갈수록 돈 많은 사람 위주로 운영되고 주로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교인에게 직분이나 발언권이 주어지는 이유다. 가정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교회에서조차 외면당해 자살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진정한 우리 가정과 커뮤니티, 교계의 문제이다. 교계가 정신 차려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한 목회자의 외침은 그냥 흘려버릴 말이 아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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