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반석위에 세워진 집

2010-05-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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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우리가 간혹 어떤 가정을 방문했을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그 가정에 배어있는 냄새일 것이다. 그것은 어두컴컴하게 느껴지는 나쁜 냄새일수도 있고 아니면 꽃처럼 향기로운 냄새일 수도 있다. 기분이 나쁜 냄새는 그 가정의 내재돼 있는 말못할 문제일 수도 있고 가족 사이에 드리워져 있는 갈등이나 마찰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정의 문제가 잘못된 부부관계나 부모 자식 관계에서 비롯되는 현실을 보게 되면서 올바른 부부 혹은 가족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향기나는 가정을 만드는 비결임을 깨닫게 된다.

가정의 문제점은 대개가 알고 보면 부모든, 부모 자녀간이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족들 사이에 서로 “사랑한다” “감사하다”와 같은 말이 쉽게 나오지 않다보니 서로간에 앙금이 덩어리가 되어 결국 풀어질 수 없는 관계까지 가는 경우를 흔히 본다. 특히 한국남성들은 “아내에게 아니 그런 표현을 꼭 말로 해야 하냐”고 하면서 멋쩍어들 하는데 이에 대한 해답은 분명하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표현한 만큼만 상대방이 그 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들도 사실은 “다 알겠지” 하면서 지레짐작 상태의 대화부족에서 오는 것
을 보게 된다. 그래서 어떤 부부는 매일 대화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놓고 가족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드는가 하면, 자녀들과도 저녁에 꼭 같이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각자의 하루 생활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곤 한다.


혹은 여건이 되지 않아 배우자든, 자식간에 이런 대화가 어려운 경우 매일아침 도시락이나 자동차 안에 조그만한 쪽지를 적어 놓고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안에 숨겨진 마음이나 생각을 가족간에 이어갈 수 있는 지혜로운 대화방법중의 하나다.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될 수 있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데 대한 용서를 구하는 내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하는 남편에게, 집안에서 하루종일 고된 일을 하는 아내에게, 아니면 학교공부에 시달리는 자녀에게 사랑과 격려를 담은 마음의 편지이다. 그런 문구를 읽어보는 가족의 마음이 어찌 기쁘고 흐뭇하지 않겠는가. 놀랍게도 이 조그마한 배려가 가족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힘을 주고 삶을 아주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원천이자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공의 근간은 바로 이 가족애로 뭉쳐진 가정에서 비롯된다.
주위에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만나기만 하면 거의 탁구공처럼 듣기에도 거북할 정도의 말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한인부부가 있다. 이들은 비뚤어진 마음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면서 상대방의 결점을 용서보다는 오히려 변화시켜 보겠다고 서로 다툼을 해온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신앙생활 속에서도 언어폭력을 일삼던 이들 남편과 아내는 얼마 전 ‘말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라’는 책을 읽고 변화를 받았다는 고백을 내게 해 왔다.

가정의 달, 5월 한달은 곳곳에서 가정에 관한 행사들을 하느라 요란하다. 가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늘날 한인사회에도 이들처럼 적지않은 가정이 혼돈을 겪고 있다. 이제는 가정에서 “너는 너 좋을 대로 살고, 나는 나 좋을 대로 살자.” “나의 일에 간섭말라” 하는 말이 보통이 돼버렸다고 한다. 가정에 관한 책들이 아무리 나와도 가정의 생활은 이처럼 악화
되는 게 현실이다. 바람이 불면 한 순간에 날아가는 모래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구성원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배우자나 자녀의 가슴에 온갖 씻을 수 없는 상처의 대못을 박으면서 살고 있다. 가정의 회복은 이 못을 빼면서부터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욕심, 나의 아집, 나의 이기심, 나의 교만, 나의 못된 자아가 배우자나 자녀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다. 가정의 반석은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전문가의 말대로 가족간에 솔직한 대화, 용서, 이해, 그리고 내면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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