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2010-05-06 (목)
크게 작게
박민자(의사)

백악관 출입기자단이 주최하는 연례행사인 이 만찬이 지난 1일 토요일 밤에 CNN 생중계로 방영되었다. 나비 넥타이와 턱시도로 정장을 한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이 모인 만찬의 하이라이트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화사한 장미꽃으로 장식한 테이블에 자리잡고 있는 오바마 미셀 퍼스트 레이디다.디너쇼는 오바마 대통령의 기지가 넘치는 재담으로 시작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 나의
모든 농담은 골드만삭스 제공입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웃든 말든 골드만삭스는 돈을 벌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사기혐의로 피소된 월 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를 꼬집었다 대통령의 뛰어난 감각의 유머가 이어지는 동안 청중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무엇이 그리 우스울까? 그들은 대통령의 재치 있는 재담에 전기에 감전되듯이 금방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는 그들이 웃고 난 다음에야 한참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바로 나의 영어실력의 한계다.

대통령 다음 순서로 토크쇼의 제왕인 제이 리노(Jay Leno)의 차례가 되었다. “렛츠 무브”(Let’s Move)라는 슬로건으로 어린이 살빼기 운동을 벌이는 미쉘 오바마와 칼로리가 높은 기름진 음식을 마구 먹어대는 대통령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익살스럽게 공개되었다.동영상 화면으로 어린이와 부모, 식품업계의 건강식품 개발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건강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역설하는 퍼스트 레이디 등뒤에 앉아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열심
히 살찌는 음식을 먹고 있다. 미쉘 오바마의 어린이 비만퇴치운동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코믹하게 비추어졌다. 그리고 코미디언은 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후 시달리고 있는 스트레스는 건강보험개혁안, 현재 치르고 있는 두 개의 전쟁, 이란과 북한문제 그리고 장모를 백악관으로 모시고 들어온 일이라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실내를 가득히 메운 청중들을 웃긴다.


디너쇼가 진행되는 동안 토요일 저녁 뉴욕 타임스 스퀘어 폭발물테러 미수 사건이 터져 미디어를 발칵 뒤집었다.그뿐인가? 미국 멕시코만 석유시추 시설 폭발로 유출된 거대한 검은색 기름띠가 높은 파도를 따라 마침내 미국 해안에 접근해 루이지애나, 앨라바마, 플로리다, 미시시피 등 4개 주를 덮치고 있다.
미국 최대의 새우와 굴의 양식장들은 기름에 범벅이 되어가고 있다. 기름띠는 죽음의 띠로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목을 조르고 있다. 이번 사태로 어업생산이 중단되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할 전망이라면서 피해 어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카타리나 허리케인으로 간신히 회복하고 있는 루지애나주는 이번 사태의 피해 규모는 카타리나가 6번 강타한 것 같은 대규모 재앙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2007년 서해안 원유 유출사고로 바다가 검은 기름으로 뒤 덮였을 때 거의 1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서해안 앞바다에 몰려와 원유가 뭉친 타르덩어리와 기름을 제거하는 범국민적인 작업을 벌렸다. 그때 하나로 뭉치는 응집력은 대단했다. 그때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연예인과 유명인사들을 모아놓고 우스개 소리로 진행되는 잔치가 벌어졌다면 어떠했을까?

오늘 우리는 한 세기 동안 석유에 의존해온 교통과 산업의 발전으로 석유에 굶주린 에너지 고갈시대에 살게 되었다. 석유시추선은 바다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석유를 채굴하면서 천원자원과 생태계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이제 성난 바다는 높이 치솟는 거센 파도로 거대한 검은 기름띠를 몰고 오면서 인간의 탐욕을 응징하는 것 같다. 이런 대형 재난 사태 속에 대통령이 참석한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허리가 끊어지라고 웃어대는 디너쇼가 전국에 방영되어도 미국시민 시청자들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것 같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