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라지 쎄일

2010-05-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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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여건이 준비되고 형편이 되어 10여년 전에 살던 집으로 다시 이사하기 로 하고 이사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동안 살아오면서 생활 구석구석에 숨어 있었던 자잘구레한 삶의 조각들이 어찌나 그리 많이 나오는지,,,,,,. 다 낡고 헤진 구두도 몇켤레가 신발장 구석에서 삐죽하게 뒤축을 내보이고, 한때는 날렵하고 힘찬 스윙을 자랑했던 테니스 라켓은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는 가방속에서 줄이 끊어진 채 신음하듯이 누워있었으며, 라켓을 휘두르는 대로 계속 지칠줄 모르며 끊임없이 통통 튀며 코트를 오갔던 수 많은 공들도 박스안에서 데굴거리며 왕년의 왕성했던 에너지를 그리워 하는 듯 하였다.

그뿐인가, 어디서 주어온 것 인지 아니면 얻어온 것인지 몇개의 바퀴살이 끊어지고 타이어가 납작해진 자전거도 한쪽 구석에서 절름거리듯 낡고 녹슬은 뼈대를 벽에 기댄채 간신히 서있다.


그동안 어디에서 그렇게 모았는지 투명하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유리구슬도 여러개의 유리병에 가득가득 모여 옹기종기 어디로 팔려 갈지 서로 궁금해 하는 눈치다. 옷장에는 30여년전 미국에 이민올 때 가져왔던 알록달록한 몇벌의 티셔츠, 남방셔츠와 함께 언제 샀었는지 기억도 까마득한 옷가지들이 마치 도살장의 도축된 쇠고기들 처럼 길게 상체를 내리고 쳐져서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 준다.

집사람과 함께 부엌을 정리하는데 여기는 또 웬 그릇과 유리조각 그리고 주방집기들이 그리도 많은지,,,,.? 찬장의 구석구석, 그리고 서랍서랍마다 온갖 잡동사니같은 살림 도구들이 즐비하게 누워서 또는 앉아서 서랍을 열때마다 서로 부딪쳐 챙강거리고 찰랑거리며 심난하게 소란스럽다.

그리고 한 벽장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또 언제 리커 스토어를 차렸었는지,,, 알게 모르게 사다 놓고 마시다 만, 또 전혀 뚜껑도 열지 않은 수 많은 술병들이 수북하게 줄 서 있다. 이층에 올라가 아내의 옷장을 정리하는데 그곳은 정말로 “참 옷도 많이도 사모았다”라고 탄식이 나올 정도로 그 동안 살아온 삶의 껍질들이 옷장 가득히 그리고 방안 가득히 널려있었다. “이제 나이도 그러니 모두 정리하고 간단하게 이사를 하자”고 이야기 하였더니 기꺼이 동의하여 주말에 거라지 쎄일을 하기로 하였다.

동네의 미국 신문에 거라지 세일 광고를 내고 이 세일을 돕기 위하여 샌디에고에서 딸이 일부러 금요일 저녁에 올라왔으며, 가까이에 살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도 토요일 새벽부터 일찍 찾아와 함께 앞 마당에 집안의 물건들을 내놓는데, 아직 여섯시 밖에 안 되었건만, 길 앞에는 벌써 물건을 보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차를 세우고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방안과 차고에서 손님들에게 팔기 위하여 끄집어 내어 놓는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은 한도 끝도 없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드디어 앞 마당에 가득차게 늘어 놓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한개씩 두개씩 물건들을 파는데 마침 우리가 거라지 세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찾아 온 친구 부부가 마당에 한가득 펼쳐져 있는 각종 살림도구와 그릇들,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을 보더니, 우리를 보고 들으라는 듯이 불쑥 한마디하였다. “으이구! 이 많은 물건들 대신 그 돈으로 금을 샀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떼부자가 되었을거다!” 그러자 그러잖아도 자신의 삶의 때와 숨결이 묻어있는 옷가지들과 살림도구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팔아야 하는 것이 좀 떨떠름하고 부담스러웠던 아내가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그래도 그 동안 이렇게 하면서라도 이 사람과 함께 사는 스트레스를 풀었잖아요?” 하며 얼른 말을 되받았다.

그 말을 옆에서 듣고 킥킥 웃고 있는 딸과 아들 그리고 며느리를 위해 내가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게되었다. “헤이! 딸, 아들 그리고 며느리! 당신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생활의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런 고물같은 옷가지나 유리조각 대신 금을 사세요. 그러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나중에 떼부자도 될 수 있으니까,,,!”


(310)968-8945
키 한 / 뉴-스타 토렌스 지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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