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0년전 뉴욕의 4. 19 학생데모를 회고한다

2010-04-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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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평(커네티컷 주립대 명예교수)

요즘 한국에서는 4.19 학생혁명 6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가지 행사가 마련됐다. 4.19 학생데모는 1960년 3월 15일 대통령선거에서 부정이 있었기 때문에 정의에 불타는 한국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이승만정권의 몰락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야당이었던 민주당 정부를 탄생시킨 것이다. 뉴욕에서도 60년전 4.19 부정선거를 반대하는 학생데모가 있었다. 나는 뉴욕학생회 회장으로서
4.19 학생 데모를 주도했다. 나는 1957년 가을 학기부터 컬럼비아 대학교 국제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과정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오기 때문에 21세 내외였다. 그 당시 뉴욕에 정착해서 살고있는 한인 수는 30여명에 불과했다.

그 반면 한국인 학생은 50-60명이 넘었기 때문에 뉴욕 한인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컬럼비아 대학원에 들어오니 나보다 4-5세 더 많은 한국 유학생도 있었고 심지어 10년 차이가 있는 노년의 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많은 충고도 해 주고 또 여러 가지로 기대도 많이 했다. 기대라 함은 한인학생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많이 할 것을 바라고 있었다. 우리 유학생들은 학생여권을 일년에 한번씩 연장해야 미국에 남아서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영사관의 통제를 많아 받았다. 4.19 학생혁명이 생겼을 때 미국의 한국유학생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뉴욕의 한국학생회는 한국총영사관 앞에 가서 데모를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극단적인 행동을 삼가고 희생된 한국의 학생을 추모하기 위해 한국 U. N. 대표부가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데모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또 뉴욕의 언론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한국의 4.19 학생데모의 결과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함에 따라서 미국의 언론매체는 한국의 학생운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한국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심도있게 보도했다. 미국의 3대 매체(ABC, CBS, NBC) 중 하나인 ABC 텔레비전 뉴스의 세콘데리 뉴스 부장이 나에게 전화를 하고 뉴욕학생들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한 데모와 한국 유학생에 대한 특별 방송을 하겠다면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국학생회 간부 2명과 함께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나는 뉴욕한국학생회 회장으로서 당연히 문화부장이며 학생회보 편집인이었던 뉴욕대학의 노재봉 전 국무총리와 그의 약혼녀이자, 뉴욕대학 대학원학생인 지연월씨와 함께 갔다.

ABC 방송의 세콘데리 외신부장은 보도 기자 2명과 카메라를 동반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후 30분짜리 뉴스보도 영상을 찍겠다는 것이다. 노재봉씨는 정면촬영은 거부하고 지연월씨와 나는 정면으로 카메라 인터뷰에 응했다. 뉴스 인터뷰 내용은 주로 한국학생들의 4.19 데모에 대하여 미국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뉴스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고 둘째는 뉴욕한국학생회장으로서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한국의 데모와 한국학생 희생자에 대한 몇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저녁뉴스에 방송으로 내 보내겠다는 것이다.
노재봉씨는 매우 두렵다면서 한국방영을 고사했으나 지연월씨와 나는 방송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리고 한국의 미군방송 AFKN에서도 방영되었다는 소식을 후에 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승만 정권이 지속되었다면 우리 3명은 여권을 박탈당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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