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싱싱한 바지락 ‘듬뿍’ 수제반죽 면발 ‘쫄깃’

2010-04-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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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0 손칼국수

11가와 웨스턴에 위치한 다래옥이 ‘1080 손칼국수’로 이름을 바꾸고, 직접 손으로 반죽하고 홍두깨로 밀어 만든 손칼국수와 흑미수제비를 선보이면서 타운 내 미식가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자마자 벌써부터 입소문이 난 손칼국수의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 맛을 찾아 들어선 1080 손칼국수. 손님들이 한 차례 휩쓸고 나간 뒤끝이라 좀 한가한 시간이려니 했지만, 그 동안에도 김길래 사장은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밀가루 반죽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이다. 평범한 맛에 길들여진 한인들의 입맛을 일깨워 줄, 뭔가 획기적인 ‘맛’을 찾아내기 위해 그는 지금도 직접 반죽한 칼국수로 하루 세 끼를 때우고 있다. 마치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때까지 밀가루와 함께 뒹굴 작정이라도 한 듯. 여하튼 1080 손칼국수는 맛있는 칼국수 만들어내기에 여전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김길래 사장의 프로 근성이 만들어낸 ‘걸작’인 것만은 틀림없다.



오개닉 호박·흑미 넣은 웰빙 칼국수 반죽
홍두깨로 밀고 손으로 썰어 부드럽고 찰져
에피타이저 꽁보리 야채비비밥 ‘고향의 맛’



1080 손칼국수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칼국수에 대한 평가절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칼국수의 눈높이가 달라진 것. 단순한 분식 칼국수가 아니라 성찬 칼국수라고 해야 할까? 일단 국물 맛부터가 다르다. 전혀 부족한 것 없이 우리의 입맛을 100% 만족시켜 주는 꽉 찬 국물 맛을 한 입 두 입 떠먹다 보면, 누구라도 그 맛의 정체가 궁금해질 것이다. 그러나 괜한 호기심은 금물! 누군가가 바쁘게 움직이면서 팔팔하게 살아 숨 쉬는 바지락을 운반하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시원한 국물 맛의 비결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듯 싶다.

그나저나 국물 맛이 좋다고 해서 칼국수 자체가 맛있으라는 법은 없다. 칼국수의 생명이 부드럽고 쫄깃한 면발에 있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러고 보니 칼국수 면발의 색이 별나다. 어느 테이블에는 거무튀튀한 면발이 올라가 있는가 하면 어느 테이블에는 노란 면발이 올라가 있으니 말이다. 이는 밀가루를 반죽할 때 무엇을 섞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즉 호박을 섞으면 노란 면발이 되고 흑미를 섞으면 거무스름한 면발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예 시커먼 물체까지 면발 새새에 껴 있다. 이는 다름 아닌 흑미수제비다. 흑미로 그처럼 쫄깃하고 부드러운 수제비를 만들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할 정도다.





1080 손칼국수의 쫄깃한 면발의 비밀은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직접 손으로 썰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손님도 있을 만큼, 칼국수를 써는 솜씨가 한결같다.

푸짐한 양, 맛깔스런 김치 녹차로 삶아 낸 보쌈 별미


1080 손칼국수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방에서 미리 만들어져 내오는 칼국수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냄비째 들고 나와 직접 테이블에서 끓여가면서 먹는데,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칼국수를 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반찬이라고는 겉절이 김치 하나. 그러나 열 반찬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맛깔스럽다. 게다가 2인분만 시켜도 3~4명이 실컷 먹고도 남을 만한 넉넉한 양은 영락없는 고향 인심이다. 칼국수를 먹다보면 새새에 낀 흑미수제비가 꼭 홀수로 들어가 있다는 것도 재미난 발견이다. 똑같이 나눠먹지 못한 채 남은 한 조각에 미련을 두어야 하는 1080 손칼국수. 아마 이 때문에라도 다음에 이 곳을 다시 찾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밀가루 음식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되돌아서면 어느새 소화가 다 된 듯 배가 빨리 고파지곤 한다. 1080 손칼국수는 밀가루 음식의 이런 점을 배려한 듯, 칼국수 국물이 끓는 동안 기다리면서 먹을 수 있는 꽁보리밥이 애피타이저로 등장한다. 한 공기의 꽁보리밥 위에 야채를 얹어 매콤한 고추장에 비벼먹는 맛이라니. 마치 그 옛날 시골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큰 양푼에 쓱쓱 비벼 온 식구가 나눠먹곤 했던 그 꽁보리밥의 세련된 부활이다. 선비의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만, 오순도순 얘기를 주고받으며 커다란 칼국수 한 냄비를 다 비울 때까지 앉아 있으려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뜨거운 음식 천천히 편안하게 먹으니 좋고, 가격부담 없어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역시 맛이다. 오랜만에 맛보는 엄마의 손맛 같은 것. 퇴근길에 부담 없이 들러도 언제나 반겨주는 편안한 곳으로, 1080 손칼국수는 그 상호가 의미하는 대로 10대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식당이 되었다.

한편 술을 즐기는 고객들을 위해서는 특별한 웰빙 안주인 녹차 보쌈이 준비되어 있다. 보성 녹차로 삶아 낸 삼겹살의 맛이 특별나다는 것. 저녁나절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삼삼오오 짝을 지어, 칼국수와 녹차보쌈 콤보를 시켜놓고 술 한 잔씩 기울이다 보면 하루의 피곤은 물론 불경기의 스트레스까지 죄다 풀릴 듯 싶다. 원래 다래옥은 고기 맛을 아는 까다로운 미식가들이 주로 단골로 드나들던 최상급 고기구이 전문 식당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바뀐 메뉴와 간판에 단골고객들은 당황할 수밖에. 이에 대해 김길래 사장은, “메뉴와 간판이 바뀌었더라도 맛있는 구이 맛을 잊지 못하고 저희 식당을 단골로 찾아주시는 고객들을 위해서, 기존의 메뉴들은 당분간 지속할 것”을 약속했다.


<글·사진 안진이 객원기자>


각종 해물과 바지락, 버섯, 야채 등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국물 맛을 내는 손칼국수.


웰빙안주 녹차 보쌈

꽁보리 야채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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