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깨었을까, 까졌을까?

2010-04-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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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한인교사회 회장)

우리는 흔히 교육때문에 한국에서 기회가 많은 미국땅으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이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는 것일까? 한국식 교육과 마국식교육을 분리하기 전, 우선 ‘깨인 교육일까’ ‘까진 교육일까’를 생각해 보자.

안데르센이 쓴 책중에 한국아이들이 많이 즐겨읽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어로는, “벌거벗은 임금님“, 그리고 영어로는 “Emperor’s New Clothes” 이다. 이 책의 내용은 설명하지 않아도 대중적으로 초등학교때 읽는 책이다.
이 이야기는 ‘어린아이와 같이 사실대로 말하라’는 교훈을 준다. 이 것이 깨인 교육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진실성이다. 거짓말쟁이가 되는 게 어른이 제일 잘 하는 일이다. 말을 돌려서, 진실을 왜곡해서, 이리 저리 돌려가며 말하는 게 어른이 제일 잘 하는 일 중에 하나다. 이렇게 어른이 돼가면서 사람들은 까지게 된다. 참 슬픈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권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위가 높으면 높을 수록 거짓말이 늘어나고 과도해진다. 이렇게 까진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살펴볼 때, 나는 참 안타깝다.


나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다니던 중 뉴욕으로 이민을 왔다. 처음에는 영어를 못해 친구들도 잘 사귀지 못하고 한국을 많이 그리워 하면서 살았다. 몇 번이나 보따리를 싸들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엄마한테 떼를 쓴 기억이 난다. 그러다 거의 일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6학년때 학교에서 모니터 (Monitor, 한국의 학교 선도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학생)가 되었다. 저학년 학생들을 관리하는 모니터가 됐다. 나에게는 큰 자부심을 가져다주는 직업이었다.

아주 기쁘게 뒷짐을 지고 나는 모니터의 책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어린 학생들을 지시하며 나만의 ‘힘’을 누렸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으면 천천히 걸으라 일렀고, 줄넘기를 같이 쓰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사용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싸움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께 혼이 날 것이라고 경고도 주곤 했다. 어느날 아침, 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운동장에는 1학년부터 6학년 학생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성숙한 6학년 학생 모니터로서 예전처럼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면서 나는 어른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며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그 중에 한 어린학생이 나에게 대들었다. 그 아이
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너는 껌을 씹으면서, 나에게는 씹지말라고 하니?”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속으로 “쪼그만 게 까불어” 하면서 그 아이를 나의 강한 눈초리와 말투로 제압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왜 나는 위선을 떨까? 나는 껌을 씹으면서 왜 이 아이에겐 씹지말라고 하며 잘난 척 위선을 떨었을까?’하고 반성을 했다. 즉시 그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내 입에서 껌을 꺼내 종이에 싸서 버렸다. 그 어린 아이도,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나를 따라했다. 그 순간, 나는 그 아이로 인해 깨인 경험을 하였다. 내가 먼저 본보기가 되자. 위선은 떨지 말자 하고 나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를 생각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더욱더 솔직히 있는그대로 이야기 해 주는 사람과 아이들은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솔직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있는 그대로, 거짓없이 살겠노라 다짐하면서 지금 이렇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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