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 산이 좋다

2010-04-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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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Summit)이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에베레스트에 오른 탐험가들이 어떻게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는지에 관한 눈물겨운 인간승리 일화들이 담겨 있다. 눈 덮인 설산, 깎아지른 얼음벽의 빙산 사진들이 실린 책을 나는 게으르게도 내 사무실, 푹신한 가죽소파에 앉아 읽는다. 도전 없는 자의 삶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지난 주에는 나도 샌타모니카 북쪽 라호야 캐년 하이킹을 다녀왔다. 나지막한 들풀이 봄바람에 이리 저리 쓸리며 춤을 춘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요한복음 3:8)라는 구절이 떠올라 바람 가는 길을 보려고 잠시 발을 멈추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풀들도 정지 동작으로 가만히 내 눈치를 본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풀숲을 헤치며 한 사람씩 밖에 못 지나가는 좁은 사잇길을 일행 열 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노란 꽃 옆에는 반드시 보라 꽃이 한 무더기씩 피어 있다. 완벽한 보색대비, 하나님의 페인팅 컬러 기법은 놀랍다. 굽이진 길목을 따라 한참 걷다 눈을 들어보면 앞섰던 일행이 어느새 안 보인다. 영국 산악계의 전설 말로리경도 1924년 그렇게 등정 일행의 시야에서 얼핏 사라진 다음에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구름 사이로 능선상에 움직이는 그를 보았으나 바람이 불고 구름이 잠깐 가린 후 그의 모습은 사라졌으며 다시 구름이 걷혔을 때 더 이상 그는 거기에 없었다. 실종 75년만인 지난 1999년, 에베레스트 북쪽 능선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유족들의 뜻에 따라 그 부근에 안장하고 장소는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하늘에서는 이 광경을 쭈욱 내려다보고 계셨을 것이다.


난이도 최하 등급의 하이킹 코스를 걷고 온 다음날 나는 두 어깨와 다리에 묵직한 통증을 느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래 걸은 탓이다. 캘리포니아의 웬만한 산을 모두 섭렵한 베테런 산악인 친구가 초보자인 내 곁에서 계속 조언을 주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갈 때는 보폭을 줄여보라든가, 미끄러운 내리막길은 발을 옆으로 딛는 것이 안전하다고 일러주었다.

알프스 전문 등정가였던 카스통은 조난상태에 있던 많은 산사람들을 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산소부족 증세로 고통 받는 사람, 빈사 직전에 이른 사람, 동상에 걸린 사람 등 생명을 위협받는 조난의 순간에 그는 동료들을 구했다. 안나푸르나 등정 후, 하산하는 과정에서 카스통은 고글을 잃어버려 순간적으로 장님(설맹)이 된 채 헤매면서도 동상에 걸린 동료를 무사히 업고 내려오기도 하였다.

그는 ‘동반자의 선택이 등반의 선택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산에 오르는 일뿐만 아니라 결혼이나 사업이나 세상 모든 일에서 다 그럴 것이라고 혼자 그 의미를 확장시켜 본다. ‘산은 지구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신비의 나라이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다’라는 명언에도 수긍한다. 이 세상 삶에서 하늘나라의 평안을 맛보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의 기술이 아니라 그 분을 향한 애정, 그리고 나를 꺾는 의지일 것이다.

‘정상’에 오른 사람이건, 혹은 올라가거나 내려오다가 실패한 사람이건, 끝없이 신비를 동경한 탐험가들은 언제나 영원을 동경하는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김범수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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