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제니퍼, 안젤라 전 자매에 관한 오해

2010-04-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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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취재 2부 차장)

촌스럽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지난달 바이얼린 듀오 제니퍼, 안젤라 전 자매의 앨범 발매기념 모임에 초대받았을 때 솔직히 긴장됐다. 장소가 세계 최고 갑부의 하나인 조지 소로스(제니퍼의 남편)의 자택이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소로스는 지난해에만 3조원 이상 벌었다) 꼭 귀족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평민이 된 기분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와있을 지, 그들과는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아님 구석에 처박혀 칵테일이나 홀짝거려야 하는 건지), 옷은 뭘 입어야 할 지... 무엇보다 이 자매들이 사람 불러놓고는 혹시 ‘홀대’라도 하지 않을지...

이런 궁상맞은 근심들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니퍼가 소로스와 결혼으로 엄청 관심을 받긴 했지만 전 자매는 인터뷰를 거의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7년 전 여성지에 난 기사가 유일하다시피하다. 그것도 “마가렛 대처, 찰스 황태자와 친분을 나누고 최상류층이 즐기는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라는 내용. 쉽게 말해 일반 관객들과는 거리를 두는, 셀리브리티 뮤지션으로 자신들을 포장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었다. 그래서 CD 발매한다는 보도자료를 이메일로 받았을 때, “그래? 그럼 공연할 때 나 한번 초대해줘. 진짜 부를꺼야?(물론 실제 표현은 달랐지만)”라고 답신을 하면서도 전혀 기대를 안했던 것이다.


이런 오해와 근심들은 자매들을 만나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아니예요! 우리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인데요”라고 웃던 언니 안젤라는 그냥 사람 좋은 아줌마필이 느껴지는 푸근한 사람이었다. “나는 한국 만화책을 너무 좋아해서 도저히 한국말을 잊어먹을 수가 없다”며 호탕하게 웃던 뉴욕필하모닉의 부악장 미셸 김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또한 40명쯤 초대된 미니콘서트에서 알게된 것은 이들이 꼭 대단하거나 상류층이어서 초대된 것이 아니고 정말로 이들 자매와 친하고 이들의 음악을 이해할 만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린 메타 뉴욕필 사장 같은 거물들의 모습도 보이긴 했다)

한가지 더. 20분 정도의 짧은 공연중에 와인에 취해 꾸벅꾸벅 조는 사람을 최소한 두 명 목격했다. 그러니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을 보다가 잠시 조는 옆 사람(남편 혹은 친구)을 너무 탓하지 말일이다. 공연 뒤 만찬이 준비되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몇 시간씩 진행될 것이 분명한 저녁까지 함께 할 배짱은 없었다. 화려한 만찬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빨리 집에 가서 얼큰한 라면 하
나 끊여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촌스럽다고 해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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