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씨를 뿌린 사람들

2010-03-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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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지난 4일 한국학교 동북부 협의회 창립 25주년 제5회 ‘교사의 밤‘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빈틈없는 준비로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는 특히 뉴욕한국학교를 창립하고 본 협의회 초대 회장을 지낸 허병렬 선생님이 공로패를 받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순서들이 모두 정말 감개무량한 순간들이었다. 이 협의회가 탄생한지 25주년! 25년이라면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뀐 세월이다. 그 동안 선생님들의 노고와 헌신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동북부 협의회는 25주년이지만, 더 먼저 생겨서 38주년, 33주년, 28주년되는 한국학교들이 있고,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벌써 학부모들이 되어 자기 자녀들을 한국학교에 보내고 있다.

영어권인 그들은 자기들의 한국말이 비록 서툴지라도 자기 자녀들만은 한국말을 잘 구사하기를 원해서 없는 시간을 쪼개어 주말 한국학교를 보낸다. 그들의 정성이 기특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문득 15여 년 전의 일이 나의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한국학교 졸업반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8학년 졸업반 학생이면서도 자기 소개 하나 제대로 말로 표현하지 못했고, ‘장래의 희망’이나 ‘나의 부모’ ‘우리 가족’ 등의 글을 쓰게 하면 맞춤법은 엉망이거니와 겨우 초등학교 1, 2학년 수준의 글을 쓰던 학생들이었다.


“너희들이 이 한국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가고, 결혼해서 아들 딸 낳으면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학교에 보낼 사람?” 하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학급 학생들 전원이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나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이제 이들이 한국학교 학부모들이 되어 자기 자녀들을 어김없이 한국 학교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세종대왕이 만들어 놓은 한글이 그토록 휼륭한 언어라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년 전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세계의 모든 언어학자들이 모여 과학성 합리성 창의성을 기준으로 하여 세계 제1위를 한 문자라는 것, 한글이 지구상에서 가장 정보사회에 적합한 문자로 컴퓨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정보사회를 이끌어 가는 문자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 것인가.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금 자기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 일인가.25년전 아니, 30년 40년 전에 뜻이 있는 분들이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오늘의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그 동안 씨를 뿌린 자, 이름도 빛도 없
이 그 씨가 잘 자라도록 거두어 들인 자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머리숙여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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