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유통 이기주의 유감

2010-03-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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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열(취재 1부 부장대우)

“뭐 좀 남아야 납품을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불경기가 심화되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의 일방 이기주의도 갈수록 더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아주 죽을 맛 입니다”얼마 전 대형 유통업체의 일방적 거래단가 인하 요구에 견디다 못해 기자와 만난 모 납품업체 L사장의 넋두리다. 요즘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판로를 개척하는 것보다 대형 유통 업체들의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란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경쟁 업체보다 한 푼이라도 저렴해야 고객들의 발길을 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처럼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골깊은 불황의 시대, 대형 유통업체와 영세 납품업체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대형 유통업체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납품업체에게는 더없이 어려운 시기로 보인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펼치는 제살깎기식 할인경쟁 속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최고의 피해자 중의 하나다.

대부분 영세 납품업체들 경우 업종을 막론한고 각 분야의 대형 업체들의 협력 업체로 살아간다. 하지만 말이 좋아서 협력업체지 자세한 내막을 들어다 보면 종속(?) 관계인 사례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일부 납품업자들은 일단 거래를 시작하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으로 지내야 그 나마 납품을 하는 업체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말을 한다. 부당한 일을 당한다 해도 웬만하면 바른 말 한번 못하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이다. 자칫 잘못하면 납품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없는 자의 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L사장은 “대형 업체들의 잘못된 유통 이기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같은 현상은 지속해 반복되면서 영세 납품 업체들을 더욱 영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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