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미Sandy & 대복David

2010-03-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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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이름이 무엇인가요?”라고 묻거나 ‘성명’’존함’이나 ‘name’이 무엇이냐고 묻더라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까닭이다. 누구나 이름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구별된다. 이 이름이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본인은 선택할 수 없고, 변경하기 힘든줄 알고 있었다. 즉 어느 민족으로 태어나느냐, 남녀 중 어느 쪽으로 태어나느냐, 그리고 ‘이름’ 세 가지는 본인에게 선택권이 없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세상이 변했다.

요즈음은 태어난 나라 밖으로 이주하거나, 이름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예로 이 지역의 우리들은 본래의 한국명에 미국명을 보태거나, 고유의 한국명만 사용하거나, 아예 미국명만 사용하는 등 각자 자유선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유로운 결정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
일제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창시 개명’이란 체험을 하였다. 본래의 한국명 대신 일본식 성과 이름을 갖도록 강요하는 식민지 정책이었다. 이에 항거하는 어린 여학생들은 ‘구쓰시다 빵꼬(양말에 뚫린 구멍)’ 이나 ‘고엥 부랑꼬(공원의 그네)’등으로 창시 개명을 희롱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꼬는 일본여자 어린이의 이름이었으니까. 이 지역 미국명의 사용은 그것과 전연 다른 자발적
인 선택이다. 따라서 미국명, 한국명 사용에 확실한 이유가 있게 된다.


한국학교에 등교하는 학생 중에는 미국명만 가지고 있거나, 한국명이 있어도 어린이에게 익숙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반드시 한국명을 사용한다. 때로는 한국명의 한자를 묻거나 그 뜻을 알아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새로 태어난 자녀의 이름짓기가 가정의 뜻 있는 모임이다. 사전을 펴가며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즐거운 행사이다. 자녀들이 제 이름의 뜻을 안다면 부모의 바람을 알게 되어 재미있게 느낄 것이다. 그런데 성씨에도 제각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으며, C사 발행 ‘성씨의 고향’은 그 원천
을 설명하고 있다. 간혹 외국인들이 한국에 같은 성씨가 많아서 어떻게 구별하는 지 의문이라고 한다. 보통 한 사람의 이름을 ‘성과 이름’ 함께 붙여서 부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혼돈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한편 미국인의 이름(first name)은 많은 경우 성서에서 찾기 때문에 같은 이름이 흔하다. 한국명은 성씨가 250가지 가량이고, 이름은 한없이 창조된다. 반대로 미국명은 이름 수효는 적고, 성씨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은 한국명을 순 한국말로 지어서 예쁜 이름이나 특색 있는 이름들이 많다. 부모들의 한국말 어휘 수효가 증가하였고, 창조력이 풍부함을 증명한다. 성씨도 아버지성에 어머니 성을 합쳐 두 자로 된 성씨도 가끔 만난다. 하여튼 특별한 이름으로 뛰어난 자녀들이 자라나기를 바란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기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어린이의 경우는 ‘나, 내’ 대신 제이름을 넣어서 말한다. “선미 하겠어요” “선미가 가지고 싶어요”라고 독특한 표현을 한
다. 어른의 경우는 “제 이름이 거기 섞이면 곤란합니다” “제 이름을 바르게 불러 주세요”등 이름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엿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이름 팔기, 이름 날리기’ 와는 먼 거리에 있다.

이처럼 이름을 아끼는 사람들은 이름을 사랑하고 있다.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각자에 속한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나아가서 속한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며 균형을 잡는다. 결코 빗나간 나르시시즘이 아니다. 이 지역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이 최소한 가정에서 한국명으로 불리며, 제 이름을 사랑하며 그 뜻을 새기며, 특징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이는 이름이 정체성 확립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고운아, 보람아, 시내야, 기쁨아, 복동아, 초롱아… 선미Sandy야, 대복David야, 이름처럼 다채롭게 자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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