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자유의지’는 축복이다

2010-03-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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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

어릴 적에야 부모나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살지만, 머리가 커지면 자기 뜻대로 살게 마련이다.

혹자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면 분명 죄를 짓고 고생할 줄 아시면서 ‘왜’ 자유의지를 주셨는지 알 수 없다고 항의할는지 모른다.


허나 조물주의 뜻은 이와 다르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실 때 “우리와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시며 특별히 만드신 것이 인간이다. 하느님은 기계나 로봇이 아닌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체를 내신 것이다.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들은 그래서 자기가 선택하여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 때문에 하느님은 사람이 원하기 전에는 선물로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를 함부로 간섭하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심지어 선물로 받은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죄를 짓는 것을 보시면서도 자유의지를 빼앗으시기는커녕, 인간이 진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어 목숨까지 내어주신다. 그만큼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자유의지를 보호해 주신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그 누구도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거나 기계처럼 조종할 수 없다.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법칙을 망각하면 상처를 입고 아픔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 알고 보면 제 뱃속에서 나온 자식까지도 제 것으로 여겨 제 맘대로 조정하려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이 아니다. 각자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사는 삶이 하느님의 창조계획을 받드는 순리요, 자연법칙이기에 말이다.

자유의지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소중하고 좋은 것일까? 그것은 선택의 ‘자유’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가 바로 행복이며 기쁨 아니겠는가. ‘평양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진정 인간은 힘이 난다. 일례로 골프 치는 사람은 스스로 택했기에 장장 너댓 시간을 걸으면서도 신바람이 난다.

공부도 그래서 자기 스스로 택해서 해야 한다. 혹시라도 부모의 강요로 마지못해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가 되면 그의 인생길은 불 보듯 뻔한 고생길이다. 평생을 고통으로 신음하는 아픈 사람만 상대하는 직업이 의사다. 결코 함부로 덤빌 직업이 아니다. 웃고 지내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 아닌가. 비록 결혼해 한몸이 되어 사는 부부 사이라 해도 그렇다. 서로 간의 사랑은 강요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유의지에서 우러난 사랑의 결실이다.

성직인들 예외랴. 인간 구원의 기쁨 없이, 그저 존경받는 삶 같아 부모의 강요로 사제나 수도자가 된다면 홀로 사는 독신의 길이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그러나 자기가 좋아 스스로 선택한 수도자나 성직자의 삶에는 행복의 미소가 있다. 이것은 분명 창조주가 주신 자유의지의 축복이다.

자기가 원해서 한 결혼은 행복하나, 억지로 한 결혼은 왕비가 되어도 불행하다. 옛날에는 자유의지를 침해당한 경우조차 ‘팔자’거니 여기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팔자타령하며 살기에는 사람들의 머리가 너무 커졌다. 진정 인간은 자유의지가 존중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하다. “너희가 원한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신 하느님의 창조 선물이 바로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김재동 /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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