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개혁안은 생존의 젖줄

2010-03-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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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이민개혁안의 논의는 부시 행정부 시절 2006년도에도 뜨겁게 닳아 올랐다. 911 테러 이후 이민자를 압박하는 분위기에 미비서류자들을 형사 처벌하겠다는 반이민 법안이 상정되었을 때 불체자의 신분이 두려웠던 한인이 몸이 아파 죽어가면서도 응급치료를 포기하고 목숨을 잃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때 이민개혁지지를 촉구하는 수십만 명의 대규모 거리시위는 미국주류의 반이민정서의 분위기에 파문을 일으키고 새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그러나 쟁점으로 떠올랐던 이 법안은 곧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하지만 요사이 다시 뜨거운 이슈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나 역시 미국에서 턱없이 부족한 국내의사들을 충원하기 위해 제3국으로부터 의사들을 끌어들인 취업이민자라고 할 수 있다. 낯선 미대륙에 첫발을 디딘 이민초기 우리 집 지하실은 이민자들이 정착하기 전 머무는 난민 캠프였다. 한 가족이 이민가방을 풀고 몇 달 묵다가 가게를 차리고 나가면 그 다음팀이 밀고 들어와 그 자리를 메웠다. 그런데 1980후반부터 이민가방의 행렬이 뚝 끊어졌다. 그리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면서 우리 집은 제3국의 때를 벗은 화려한 변신의 방문객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MBA 과정을 밟으러 오는 유학생, 태어나자마자 아기의 손에 미국시민권을 쥐어주는 이색적인 원정출산 엄마들,
조기유학생들이다. 그들은 태어난 고국과 현재 살고 있는 거주 국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글로벌 시대의 세계화된 시민들이다. 우리들은 주변에서 최저임금으로 그늘에서 삶을 살아가는 서류미비자들을 늘 만나고 있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이 아닌 같은 삶의 공간에서 부딪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운명체인 이웃이 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김씨 아저씨의 이야기는 우리 한인사회의 감추고 싶은 치부이며 아픈 상처다. 김씨 아저씨는 40대 후반 가난에 시달리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고국에 남겨두고 무작정 미국 땅을 밟았다. 풀 한포기 없는 불모지 땅에서 서류미비자로 중노동에 시달리며 고국의 가족들에게 꼬박 꼬박 송금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영주권을 취득하여 가족을 만나는 벅찬 순간이 다가왔다. 케네디공항에서 아내와 남편은 두리번거리며 서로를 찾지 못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다. 아내는 작업복에 모자를 눌러 쓴 50대 초반의 찌들은 얼굴의 남자가 남편이라는 것을 알아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헤어져 있던 가족들은 자그마한 창문이 뚫린 어둠 컴컴한 지하실로 모두 모였다. 찌그러진 냄비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김씨 아저씨의 현주소였다.

며칠 후 김씨 아저씨가 일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민 가방과 함께 아내도 훌쩍 커버린 아이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남편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아내의 짧은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들고 그는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지하실의 어둠에 갇혀버렸다. 그녀는 왜 남편을 떠났을까? 그들이 헤어져있던 시간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너무나 길고 긴 시간이 흘렀다. 아내의 외로움과 허탈감은 압력솥에 갇혀있던 증기처럼 분출구를 찾아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포괄적 이민 개혁법안에 포함된 가족이민과 가족상봉의 개선조치는 이민자들의 가족의 붕괴를 막는 지름길이다.

아직도 김씨 아저씨 같은 변두리 삶을 강요당하는 이민자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하경제의 구성원이 그들의 노동력을 활성화 시키고 햇볕으로 끌어 올리면 미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승리의 면류관을 쓴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개혁 법안이 연방 하원을 통과한 후 왼손으로 20개의
펜으로 서명하는 극적인 장면이 TV를 통해 비춰졌다. 이민개혁안의 희망의 촛불도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김씨 아저씨 같은 이민자들에게는 이민개혁안은 생존의 젖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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