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탄신 135주년, 이승만박사의 건국위업

2010-03-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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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모 (이승만박사 대뉴욕기념사업회 회장/목사)

오늘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탄신 135주년을 맞아 그분의 건국위업을 회상하고자 한다. 세계경제대국 10위권에 있는 대한민국이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기까지는 수많은 선열들의 순국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 하였다고 본다. 특별히 우리가 주지해야 할 역사적 사실은 이승만박사의 철저한 반공주의 사상과 국제정세에 밝은 혜안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탄생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상해임시정부 시절부터 스탈린의 치밀한 한반도 적화 혁명정략으로 김일성과 박헌영 계열의 공산당 지하운동이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활발하였기 때문이다.

해방당시 100여개가 넘는 각종 좌익단체들이 남한 일대에서 데모, 사보타지 방화, 파업 등 미군 군정통치를 혼란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망명에서 귀국한 이승만 대통령 은 모든 좌우정당에서 추대하는 지도자였으나 남한에는 그의 철저한 반공주의사상과 민주자유경제 건국이념을 따르는 단체는 미약한 상태였다. 당시 문맹이 거의 60%에 가까운 대다수의 국민들은 공산당의 정체를 바로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오로지 노동자해방과 부루조아 타도 등 민족주체사상을 내걸고 미국 등 해양문화권의 자유민주주의를 배격하는 민족우월주의로 백성들을 회유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이승만 박사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건국이념만으로 좌익 세력과 고군분투하였다. 스탈린 공산국가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UN을 움직여 남부국민투표로 대한민국 건국의 승인을 받아냈다. UN 투표감시단의 북한 입국을 김일성이 거절하자 다시 한반도 반쪽이라도 공산당 적화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UN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남한만의 국민투표를 승인을 받았고 드디어 1948년 8월에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국민투표 일정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의 남북평화통일 협상에 회유된 김구선생과 김규식 등 일행은 투표 한달전에 38선을 넘어 소위 남북한 4자 회담(김일성, 김두희, 김구, 김규식)에 참석차 평양에 갔다. 남한에 돌아오자 즉각 대한민국건국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남북평화통일을 주창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에도 계속하여 반대성명을 낸 것은 심히 유감이다. 만일 김일성과 김구선 생의 주창대로 남북협상통일이 되었더라면 그것은 완전 적화통일 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은 김일성 김정일 독재체재 하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한 민족이 되었고 이미 아사자 아니면 탈북자로 많은 역경에 처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이 우리들이 해외에서 자유롭게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2차대전 이후 유일하게도 대한민국만이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된 것은 이승만박사의 용기있는 정치적 위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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