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2010-03-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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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희(취재 1부 기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다. 아마도 한인 콜택시 업체들간의 과당경쟁을 잘 표현하는 속담일 것이다. 불과 2주전까지도 콜택시 업체들은 기본요금을 6달러에서 1/3에 해당하는 2달러까지 깎겠다며 ‘출혈’ 경쟁을 벌였었다. 외관상 피해자는 콜택시 업주인 듯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콜택시 기사들이었다. 매주 업체에 내야하는 ‘콜비’는 그대로 인데 기본요금만 절반이하로 삭감, 가격경쟁으로 줄어드는 수익금을 고스라니 기사가 떠안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고래들 싸움에 애꿎은 새우등만 터지게 생긴 꼴이다.

결국 과당경쟁의 최대 피해자이며 약자인 ‘콜택시 기사’들이 참다못해 직접 가격경쟁 중재에 나섰다. 2년만에 와해됐던 한인TLC협회가 재조직되고 매일 밤 찬바람을 맞으며 기사 수십명이 콜택시 업체들을 찾아가 사주와 입씨름을 벌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약자인 기사들은 발언권을 얻기 위해 기자도 불렀다. 중재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궁지로 몰렸기 때문이었다. 2주정도의 조정기간 끝에 기사들은 생명과도 같은 기본요금 사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중재자리
에 참석했던 기자는 씁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언제 또다시 약자인 기사들이 콜택시 업체들 간의 ‘고래싸움’에 재물로 올라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콜택시 업체의 과당경쟁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2005년도에도 2006년도에도 비슷한 분쟁이 발생, 심한 경우에는 플러싱내 이동고객에 한해 아예 기본요금을 없애버린 적도 있었다. 경기가 안 좋거나 신생 업체가 생겼을 때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인콜택시 업계의 고질병인 ‘제살깎이식 과당경쟁’이 언제나 뿌리 뽑힐지는 알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업체 간의 경쟁하는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경쟁 방법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방식의 경쟁으로 인해 애꿎은 기사들이 추위에 떨며 콜택시 업주를 기다리는 모습이 또다시 연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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