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뿌리없는 나무

2010-03-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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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지난 주 뉴욕과 북부 뉴저지일대를 강타한 폭풍의 영향으로 여러 곳에 단전 단수가 이루어졌고 아름드리 거목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넘어진 모습들을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지붕과 자동차 위로 넘어져 집이 부서지고 자동차가 파손된 것들을 보면서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었기에 저런 거목들이 쓰러지는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넘어진 그 거목들을 보게 되면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제아무리 거목이라 할지라도 넘어지고 자빠진 나무들은 모두 한결같이 뿌리가 썩었거나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지 못했던 나무들 혹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나무 속이 비어있었다는 것이다.

가정이건 사회건 국가이건 혹은 개인이건 간에 뿌리가 썩었거나 속이 비어 있다면 반드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코넬대학이 최근 잇따른 학생 자살사건으로 ‘자살학교(Suicide School)’란 오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 학년도 들어 벌써 6명이 학업스트레스나 우울한 날씨의 영향으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대학의 스코턴 총장은 대학신문 ‘코넬 데일리 선’에 보낸 e-메일에서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주변에 친구와 가족, 교사와 동료, 상담원도 있다. 코넬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부터 배우라”며 간절한 어조로 호소했다고 한다.


‘코넬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도움을 받는 방법을 배우라’ 기막힌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도움을 받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학벌 제일주의와 출세 지상주의, 일등주의의 허황된 자만심과 교만에 빠져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 때문에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자. 그래서 인간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명문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라면 못할 것이 없는 유능한 인재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왜 자살을 하는가? 인생의 본분과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입력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 세상의 많은 종교와 철학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 해답은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생의 목적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한국에서 한 때 개봉됐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하는 영화의 한 제목처럼 좋은 학교나 성적은 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학생 개인이나 부모 모두가 왜 이처럼 좋은 학교, 좋은 성적에 죽기 살기로 매달릴까? 그것은 삶의 진정한 가치와 목표와는 상관없는 허상을 좇기 때문이다.인생은 무엇보다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즐거워야 한다. 행복은 무엇이고 또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극히 단순하고 기초적인 질문이지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질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행복이란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노력의 부산물이다.”라고 했다. 같은 논리로 즐거움은 무엇인가? “타인을 즐겁게 해주려는 노력의 부산물이다.”자살하는 사람들은 남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나의 자살로 인하여 나의 주변의 사람들이 당할 고통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의 중요한 목표중의 하나는 타인을 생각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사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성공제일주의나 출세지상주의가 아니라 행복제일주의의 교육철학이 우리의 중요한 교육의 정책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린 자녀들 앞에서도 이웃을 배려하는 교육을 확실하게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다리마다 경비병들을 강화한다는 방침만으로 이미 뿌리가 없이 살아온 일부 문제학생들의 자살을 막아낼 수 있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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