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히말라야로 가자” 붐비는 카트만두

2010-03-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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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한인산악회 티벳-네팔 횡단 등반기 <13>

여러 인종 산악인들로 도시전체가 활기
사원의 나이 어린 ‘쿠마리 여신’ 인상적
화장터 ‘파슈파티나트’는 전통의 관광지


카트만두는 히말라야를 보려고 세계에서 몰려드는 도시답게 여러 인종들로 북적거렸다. 오늘은 타멜 거리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구왕궁 (덜발 스퀘어 : Durbar Square)과 쿠마리 사원(Kumari Bahal)을 가기로 했다. 구왕궁 앞 광장을 일컬어 더바 광장(Durbar Square) 또는 바산타풀, 하누만도카라고 부른다. 힌두교에서 신성시 하는 소가 편안하게 앉아 비둘기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힌두교를 믿는 네팔에는 3억3,000만의 신이 있다고 하는데 쿠마리 여신도 그중 하나이다. 쿠마리 사원에 가면 살아있는 여신인 쿠마리를 볼 수 있다. 쿠마리의 선출기준은 6세 이전의 소녀로 부모가 살아 있어야 하며, 다쳐서 피를 흘린 적이 없어야 하며, 미모 보다는 신성함을 중시한다. 그렇지만 첫 생리를 시작하면 저주를 받았다고 해서 다음 쿠마리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쓸쓸하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 사진촬영을 금지하고는 짙은 화장을 한 유치원생 정도의 쿠마리여신이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애기여신은 우리를 처연한 표정으로 잠깐 훑어보고는 곧 자취를 감추었다.


네팔은 카트만두 분지의 네왈리족에게서 4세기에 리차비 왕조 가 성립되었고, 말라 왕조가 번영을 누린 15-18세기 후반에는 대승 불교를 비롯한 종교문화가 발전되었다.

오늘날의 네팔 왕국의 모습은 18세기 후반 구르카 족의 나라야니 1세의 통일전쟁으로 말미암은 것이나, 1814년 동인도 회사와 구르카족과의 전쟁에서 패함으로 시킴지역 등을 빼앗기는 시련을 겪었다. 또한, 네팔은 라나 가문이 국정을 장악했던 1864년부터 약 104년 동안 쇄국의 시기를 맞았다. 이 당시 대다수 국민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등 수모를 겪어야 했는데, 인도 등 나라 안팎에서 정권 교체의 노력에 힘씀으로 1950년 다시 왕정이 복귀되었다.

이후 국왕을 중심으로 한 네팔 식 민주주의 판차야트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1972년 시작으로 지식층과 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급기야 1990년 유혈사태로까지 이어져 판차야트 제도 폐지와 왕의 국정 불간섭 등 사태수습에 들어갔으나 민주화 진통의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아직까지도 힘겨운 과도기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네팔은, 히말라야라는 위대한 자연을 끌어안은 라이벌이 없는 드문 풍경에 빛의 땅이다.

스와얌 부나트(Swayamb bunath) 로 이동했다. 카트만두(Kathmandu)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를 가면 볼록한 언덕위에 흰 스투파(탑, 塔)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네팔 불교의 가장 오래된(약 2000여년)사원이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 문화유산 스와얌 부나트이다. 외국 여행자들에겐 몽키 템플(Monkey Temple)로 통하듯이 이곳에 가면 원숭이들이 아주 많다. 정상에 오르면 티벳식 반구형 스투파 위의 4각 구조물에 부다의 눈이 그려져 있다. 이는 삼라만상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상징한다.

스와얌 부나트에 오르면 카트만두 시내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주위의 조형물들도 아름답다.

짧은 일정으로 가볼 곳이 많아 사진 찍고 가이드의 설명듣기로 바빴다. 오후에는 화장터인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에 갔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많은 개들이 서성거렸다. 하루 종일 고기타는 냄새가 나니 개들이 침을 흘리며 모여들만 했다. 파슈파티나트는 갠지스 강의 상류에 세워진 네팔 힌두교도 들의 최고 성지이다. 시바 신을 위해 세워진 이 사원은 서기 477년에 처음 지어졌고, 10세기경에 파괴되어 지금의 건물은 말라 왕조 때 다시 지어진 것이다. 인도에서 건너온 많은 승려들이 있으며 힌두교도가 아니면 사원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힌두 사원보다는 죽은 시신을 태우는 화장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돈 많은 인도인들 중에는 죽을 날이 가까워오면 조금이라도 시바 신에게 가까이 가려고 몇 달 전부터 이 곳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 머물며 죽음의 시간을 경건하게 기다린다. 사원 옆쪽의 강물을 따라 몇 구에 시체가 불에 훨훨 타고 있었다. 태워야만 윤회를 할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네팔에서 제일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지이다.

저녁에는 아시아 산악연맹 회장이 네팔전통식당에 대원들을 초대했다. 세르파족이었던 그 분은 벨기에 여자산악인과 결혼을 해서 사업을 하여 많은 부를 이뤘다한다. 예전에는 왕족들만 왔던 레스트랑은 격조가 있는 곳이었다. 웨이터가 먼저 럭시라는 술을 조그만 술잔에 정확히 서서 떨어뜨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한정식 같이 계속 코스로 음식이 나왔다.


네팔의 주식은 쌀이며, 보통 하루 2끼 대표적인 식사메뉴인 ‘달빛(콩 스프), 배(익힌 밥), 떨까리(야채반찬)로 구성된다. 예전에는 손으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점차 숟가락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네팔 식사로는 밥에 섞어 먹는 음식으로 토마토와 여러 야채를 재료로 한 산지마을 사람들이 즐겨먹는 속티와(Soktiwa), 볶은 옥수수를 넣어 끓인 죽으로 데도(Dhedo), 그리고 마수(Maasu), 기우(Ghiu)등의 전통음식이 있다.

식사도중 민속음악과 춤으로 흥을 돋우어 주었다. 전통음악과 춤은 네팔문화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다. 네팔의 전통음악은 정해진 악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인 선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춤은 오락으로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기도 한다. 네팔 전통 춤은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눈 깜박거림, 손의 작은 움직임에도 의미를 가진다. 대원들 모두 함께 춤을 배워 흥겹게 어울려, 그들의 문화 속에 취한 밤이었다.

<수필가 정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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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힌두교도들의 최고 성지 파슈파티나트 전경. 갠지스 강의 상류에 세워진 이곳은 시바 신에게 가려는 사람들의 화장터로 더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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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당에서 만난 네팔 전통무용수들. 네팔의 음악은 악보가 아닌 즉흥적인 선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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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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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힌두인들의 최고 성지 파슈파티나트 전경. 갠지스 강의 상류에 세워진 이곳은 시바 신에게 가려는 사람들의 화장터로 더 알려져 있다.

- 한 식당에서 만난 네팔 전통무용수들. 네팔의 음악은 악보가 아닌 즉흥적인 선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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