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 핀마르크주 알타
▶ 아무것도 닿지 않는 곳에, 모든 것이 곁에 있다.
▶ Next to Nothing, Close to Everything.
문명의 최북단 노르웨이 핀마르크주 알타. 알타는 인류의 정착지 중 가장 북극에 가까운 도시다. 알타보다 높은 위도의 정착지는 인구 1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마을뿐이다. 지구의 꼭대기에 위치한 알타는 아무것도 닿지 않는 곳이지만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생생한 역사가 숨 쉬고 있다. 광활한 북유럽의 대자연 속에서 시간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다.
■ 순록 사냥 등 암각화 7000점알타에는 기원전 4200년 전부터 500년 전까지 그려진 암각화 7,000여 점이 남아있다. 1973년 발견된 알타 암각화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암각화는 도시의 해안선을 따라 크게 5구역에 흩어져 있는데, 가장 큰 유적지는 시내 중심지에서 불과 5km 떨어진 옘멜루프트(Hjemmeluft)로 3,000여 점이 몰려 있다. 암각화 유적지를 관리·연구하는 알타 박물관도 이곳에 자리했다.
옘멜루프트는 선사시대 계절에 따라 유목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제례의식을 치르던 장소로 알려졌다. 바위에는 순록과 곰, 고래 등과 이를 사냥하는 인간의 형상 등이 그려져 있다. 암각화를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바위들 사이로 3km 길이의 나무 덱으로 된 길이 놓여 있다.
덱길을 걷기 시작하면 역시 가장 먼저, 자주 눈에 들어오는 암각화 형상은 순록이다. 순록은 험난한 북극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동물이었다. 다양한 동물이 암각화에 등장하지만 순록의 비중이 높다. 7,000년 전 새겨진 암각화가 모여 있는 첫 구역도 순록 사냥이 주된 내용이다. 처음에는 사냥한 순록을 기록한 그림에 지나지 않지만 점점 장면 구성이 다양해진다. 창과 활 같은 사냥 도구가 등장하고, 함정도 등장한다. 울타리를 점점 좁혀가며 순록을 몰이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암각화가 압권이다. 순록 떼를 바다로 몰아넣어 배를 탄 채 사냥하는 모습이 새겨진 암각화 앞에선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천 년을 걸쳐 지형이 달라지면서 암각화 위치도 변했다. 해발 20m 이하에서 볼 수 있는 암각화는 6,000년 전에 그려졌다. 석기시대 때 갯바위에 새겨진 암각화가 북극의 빙하가 녹으며 지각이 융기해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암각화의 위치가 높아졌다. 위치뿐 아니라 암각화를 통해 인류의 발전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체적으로 배의 내부를 그리기 시작했고, 대각선으로 잘린 듯한 배를 그려 침몰하는 장면도 표현했다. 덱을 따라 좀 더 들어가면 2,000여 년 전에 새겨진 암각화까지 볼 수 있다. 가장 최신의 암각화다. 이 그림에선 30명 이상이 탑승한 대형 선박도 등장한다.
알타 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진 지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1920년대 이후 한두 점씩 발견되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긴 세월 무관심 속에 방치됐지만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보존 상태는 양호했다. 다만 문화재의 원형 보존에 대한 인식이 현재와 달랐던 발견 초기에는 형상이 잘 보이도록 암각화를 붉게 칠했다. 현재는 붉은 칠을 걷어내는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 순록과 더불어 산 원주민 ‘사미’북유럽 초기 문명을 닦았던 원주민의 삶도 만날 수 있다. 북유럽 원주민 사미족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에 걸쳐 생활했다. 3,000여 년 전인 청동기 시대부터 북유럽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현재 8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사미 중 5만여 명이 노르웨이에 거주한다. 알타도 이들이 자리 잡은 지역 중 하나다. 시내 교외 알타강변에는 사미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사미 시이다(Sami Siida)’가 자리한다. 시이다는 사미어로 공동체·정착지라는 뜻이다.
시이다에 도착하자 사미 전통 복장 ‘각티’를 갖춰 입은 니일라스 헨다랏 사라(Niillas Heandarat Sara·70)가 기자를 맞았다. 각티는 선명한 푸른 의복에 붉은색, 하늘색, 황동색 등 화려한 자수가 놓여 있다. 허리춤에 맨 가죽 혁대에는 순록 뿔 장식이 붙어 있다. 니일라스는 열네 살이 되던 해 순록을 치는 가업을 이었다.
“노르웨이의 사미는 거주 지역에 따라 크게 ‘해안 사미’와 ‘툰드라(내륙) 사미’, 그리고 순록을 치며 유목 생활을 하는 ‘순록 사미’로 나뉜다”고 니일라스가 설명했다. 계절에 따른 대이동을 하지 않는 핀란드 순록과 다르게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순록은 겨울은 내륙에서, 여름은 해안에서 난다. 니일라스는 “여름에 해안 사미 마을에서 지내다 대이동이 시작되면 순록도 함께 데려간다. 겨울 동안 내륙에서 지내며 대신 길러주고 다음 여름에 마을에 돌려준다. 내륙 마을의 순록도 마찬가지로 여름에 맡아준다”며 순록 사미의 삶을 소개했다.
유목 생활을 하는 순록 사미는 세 부족 중 현대 문명을 가장 늦게 받아들였다. 순록 사미는 전체 사미 인구 중 10% 남짓에 불과하지만 옛 전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시이다에 설치된 전통 천막 ‘라부(lavvu)’ 안에서는 전시된 전통 복장과 요람 등을 보며 사미가 영위했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라부의 뒷문을 나오면 시이다의 핵심 공간인 순록 목장으로 이어진다. 사람을 잘 따르는 순록 서른여 마리를 따로 선별해 유목하지 않고 기른다. 니일라스가 순록이 좋아하는 지의류 포대를 꺼내자 금세 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아직 어린 개체들은 기다릴 틈 없이 포대에 머리를 박고 간식을 먹기 바쁘다.
■ 북극 해안 도시 잇는 바닷길근현대 들어 노르웨이인 대부분은 해안에 도시를 세워 정착했다. 이 해안 도시들을 연결하는 후르티그루텐(Hurtigruten) 항로는 지역 주민들의 생명줄이다. 좁고 긴 지형인 노르웨이는 해안선이 복잡하고 산지가 험준해 육로 이동이 쉽지 않다. 겨울이면 도시들이 통째로 고립되는 일도 다반사.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일이 후르티그루텐 항로 개척이다.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따라 북대서양과 북극해를 항해하는 항로는 1893년에서야 가까스로 성공했다. 첫 기항지인 서해안 남부 호르달란주 베르겐에서 동북부 끝인 핀마르크 시르케네스까지 7일이면 도착한다. 항로 개척 이전에는 5개월이 걸린 여정이 단 일주일 만에 가능해지면서 해상 이동이 활기를 띠게 됐다.
현재는 관광객도 체험할 수 있는 연안 크루즈 상품이 개발됐다. 항공 이동이 보급돼 여객 수요에 여유가 생긴 덕이다. 노르웨이의 상징인 피오르 해안선과 거친 북극해, 겨울철에는 오로라까지 감상할 수 있어 노르웨이의 대표 관광 상품으로 떠올랐다. 주민들의 필수 이동수단이기에 무려 34개 항구에 기항한다. 항구당 정박시간은 길지 않아 해안·바다 감상이 주된 목적인 크루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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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호닝스바그·키르키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