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죽음

2010-03-17 (수)
크게 작게
김윤태(시인)

어느 나라 사람이건 이민을 온 사람들은 땀이란 단어 하나를 무기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살아온 조상이 없었으니 조상이 만들어 낸 재산이든 경험이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전혀 없으니 땀이란 단어 하나를 무기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옆 가게 주인은 폴란드에서 온 노인이다. 새벽 별을 보면서 집을 나와 밤별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간다더니 새벽 세시에 나와 아들과 빵을 굽는 부지런한 노인인데도 재수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장사 수완이 없어서인지 손님으로 북적거리던 빵가게를 인수하고 나서부터 한사람 두 사람 손님이 줄더니 지금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가게 세를 제대로 내지를 못했는지 아침이면 빌
딩 주인이 와 가게 세를 빨리 내라고 채근을 하다 간다.

기운은 꽤 좋아 보이는 노인인데 머리는 완전 백발이다. 처음에는 담배 한 갑이면 한 이틀은 핀다더니 요즘에 와서는 초조하고 답답해선지 담배 피우는 것이 늘고 늘어 하루 세 갑 정도를 핀다. 그런데도 그의 부인은 낙천적이다. 언제나 웃으면서 사람을 대했고 걱정은 남의 일처럼 일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노파가 나이 70을 등에 지고 먼 길을 떠났다. 남편 되는 노인은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다음날 새벽에도 빵을 구우려고 가게로 나왔다.우리는 곧잘 영원을 이야기 하지만 삶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단어
인 삶과 죽음, 그 삶은 순간이자만 죽음은 영원이다. 순간이 영원을 망각하고 하루를 사는 것이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환갑이 지나면 꽤는 오래 산 사람으로 여겼고 또한 나머지 인생을 덤으로 살게 됐다고 환갑잔치를 거대하게 했지만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나서부터는 나이 70이 넘어도 별로 길게 살았다고 느끼지를 않는다. 그러면서도 노인들은 초조하다.아침에 눈을 뜨고서야 어제 하루를 무사히 살았고 오늘 하루도 살게 되나 보다 하고 아무도 모르는 긴장과 초조에서 잠시 벗어난다.
70살을 넘긴 사람들은 솔직히 내일을 모르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오늘도 “살았구나.” 할 뿐이다. 옆 가게 폴란드에서 온 정정한 노파의 죽음도 예상치 못한 죽음이다. 따지고 보면 산다는 것은 별 것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노력에 노력을 보태고 경쟁에 질시를 더하고, 다투고, 거역하고, 변질한다. 소유 때문이다. 다 놓고 갈 그 소유가 삶의 기쁨과 행복한 웃음을 잃어버리게 하면서 삶을 괴롭힌다.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내 눈 앞에서 다 놓고 가셨다. 세상에 영원이란 단 하나, 그것은 죽음이고 그 죽음의 영원은 소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천체 망원경으로 보는 밝은 달의 뒷면은 암흑이다. 밝은 면은 변하지만 암흑은 변하지 않는다. 암흑이 곧 영원이고 그 영원이 곧 죽음이다. 오늘은 해가 떠서, 살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우리 눈앞이 밝지만 암흑으로 걸어가는 행진이 우
리들의 삶인 것을! 그러나 세상은 씻을 수 없는 속세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고약한 냄새가 많이 끼어 있어 살수록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종교라던가 예술이 있고, 그 외에도 어떤 사소한 기쁨을 느꼈을 때 삶의 여정이 썩은 물에서 피어낸 연꽃이 된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인간이 임간임을 지키기 힘 든 세상. 인간의 본질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