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남은 자의 몫

2010-03-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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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0일, 전 세계 월드비전 가족들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월드비전 파키스탄으로부터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드로부터 65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만세라 지역의 월드비전 사무실에 정체불명의 괴한 십수명이 난입, 사제폭탄을 터뜨리고, 총을 난사해 6명의 직원들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사망자들은 월드비전 현지사업 원칙에 따라 모두가 파키스탄 현지인 직원들입니다. 현지의 문화와 언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사업을 수행하고 그들을 훈련시켜 궁극적으로 그들에 의한 자립이 이루어지도록 도와 외부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월드비전 원칙이지요.


월드비전은 1992년터 파키스탄 활동을 시작했고, 비극이 일어난 곳은 2005년, 10만 이상이 사망한 파키스탄 대지진 이후 장기 재건계획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떠들썩했던 전 세계 미디어가 다른 이슈를 찾아 떠나자 단기간의 단순 긴급구호로 활동을 종료한 다른 기관들과는 달리, 무려 5년이 넘도록 그들과 함께하는 월드비전에 대해 비록 기독교 기관이지만, 무슬림인 주민들로부터 깊은 신뢰와 감사를 얻고 있던 지역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요? 이런 저런 추측만 있을 뿐 아직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자행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의 활동 헌장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종교, 인종, 민족, 성별에 관계없이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함께 가난과 사회 부정의를 가져오는 근본 원인 해소에 개입함으로써, 단순 문제해결을 물론 그들의 문제해결 잠재력까지 극대화시키는 국제 기독교 자선기관이다.”
이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2,000여년 전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공생애 기간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분은 종교가 다르다 해서, 손을 내밀지 않으신 적도, 여인의 직업이 하찮다 해서 외면한 적도 없으십니다. 인종과 민족과 종교와 관계없이 그 분을 필요로 한 누구에게나 다가가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월드비전이 따르고자 하는 예수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일까요?

사망한 동료들 중에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고 월드비전 같이 좋은 기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이제 20세, 꽃다운 나이의 여직원도 있습니다. 여섯 자녀와 아내를 남기고 떠난 40대 가장도 있습니다.

그들은 국제정치도 모르고 종교분쟁에도 관심 없는, 단지 동족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일한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동료들입니다. 일하는 지역도, 인종도, 언어도 다르지만, 재난과 가난이라는 공공의 적에 대항해서 용감히 투혼을 불사르던 나의 소중한 전우들입니다.

17일 수요일, 전 세계 월드비전 직원들이 그들과 유족들을 위해 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마음에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들과 이어지는 분노를 그 시간 이 후로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남은 자들에게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더욱 열심히 가난과 재난, 부정의와 불평등에 맞서 그들의 몫까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남아있는 자들의 의무일 것입니다.

잘 가시게들! 나의 사랑하는 동료들. 편히 쉬시게들! 고통과 편견 없는 세상에서.

박준서 /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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