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오, 3월이여!

2010-03-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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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목사/수필가)

지나간 6일은 ‘경칩(驚蟄)’이었다. 경칩이란 동면하던 벌레들이 봄기운에 깜짝 놀란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리고...”라는 말이 옛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제 겨울은 지났는가? 아직도 바람은 쌀쌀하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 겨울 옷을 벗지 않고 있다.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습관 때문일까? 정말 겨울은 지나갔는가? 봄은 마치 예술가의 손과도 같다고 느껴진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살짝, 조심스럽게 봄은 손을 뻗쳐온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소리없이 바꿔 놓는다.

마치 창조하는 예술가의 손처럼 봄은 묵은 것과 새것을 뒤바꿔 놓고 여기 저기 꽃씨를 뿌려 놓는다. 아무것도 다치지 않으면서... 마치 얼굴을 붉힌 소녀처럼 대지는 그 봄의 정기로 터질 듯한 가슴에서 풀잎과 꽃잎을 꺼내 놓을 것이다. 조금도 아낌없이 말이다. 이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봄이 왔다. 3월은 봄의 대명사다. 그래서 ‘춘(春) 3월’이라고 하지 않는가. 봄기운은 자연의 ‘러브레터이다. 사람들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수탉이 울고, 시냇물이 흐르고, 참새들이 지저귀고, 호수가 빛나고...”


이렇게 노래한 워즈워드 (Wordsworth,1770-1850 영국의 자연계관 시인)의 자연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래도 먼 산에서 기쁨의 소리가 들려오고, 샘에서 생명이 솟아오르는... 마치 그런 소리가 우리의 귀에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착각일까. 봄이 나를 반긴다고 여기는 게 착각이란 말인가.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까.

봄은 장난꾸러기인가? 변덕스러운 예술가의 손처럼 언제 또 눈보라를 날리게 할런지 모른다. 그리하여 고개를 살짝 내밀던 나뭇가지의 새싹을 움츠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3월은 봄이다. 그리고 꿈과 꽃의 계절이다. 제아무리 북풍이 물러가기 싫어서 심술을 부린다 해도 봄을 향한 우리의 꿈은 꺾을 수 없을 것이다. 최후로 발악하는 눈보라가 모질다 해도 봉오리 지는 꽃의 정기를 막지 못할 것이다. 겨울은 이제 가버렸다. 겨울의 죽음을 애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고개를 쳐들며 봄의 대기를 한껏 들이마실 때 겨울의 잔해는 이미 없는 것이다. 아직은 꽃이 피지 않았고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누구 하나 흥겹게 봄을 노래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봄은 왔다. 3월은 봄인 것이다. 비록 아직은 봄이 확연히 보이지 않는다 해도 누구나 봄을 느낄 수는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봄과 우리는 일체감을 이루었다고 자신한다. 봄의 꿈을 잃지 않는 동안 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오오 3월이여, 어서 봄을 꽃피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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