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랑스런 한국피겨 스케이팅 만만세!

2010-03-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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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성(전 국가대표선수 코치)

1964년 여름, 한국일보사 후원, 대한피겨스케이팅협회(당시) 주최로 열린 제4회 아이스카니발, ‘스케이트 타는 춘향전’ 공연을 계기로 선수들의 연습량이 증가하여 잠재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마침내 1968년 이해정 감독과 이광영(남), 김혜경, 이현주(여) 선수등 4명은 한국 피겨 역사상 처음으로 그레노블 동계올림픽과 인스부르크 동계U대회에 참가하였다. 성적은 하위(남 28위, 여 30, 31위)를 면치 못했으나 감독뿐만 아니라 어린 선수들도 많은 것을
보고 직접 경험하였다. 1970년에는 헬싱키 동계U대회에 필자가 코우치/감독(당시 협회의 경기이사)으로 선수들을 인솔하였다(필자는 같은 해 도미유학 길에 올라 학문에 진력함).

이후 외국 코치의 방한으로 경기실력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고난도 스핀과 점프를 시도하여 습득하는 선수가 갑자기 많아졌다. 한국에서는 더블악셀, 살코우, 럿츠, 플립, 토우루프 점프 등과 그의 컴비네이션, 그리고 플라잉, 비엘만, 체인지 풋 스핀 등의 연기는 이즈음부터 널리 응용하게 되었다. 계속하여 삿보로 동계올림픽(1972),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1976)에도 장명수, 윤효진 선수가 각각 출전하였다. 4년마다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한국 피겨선수들이 매번 1-2명 출전하였지만 부진한 성적을 면치 못했다. 1980년도에 들어 해외 유학파들의 급증으로 실력의 향상이 뚜렷해졌으나 올림픽에서의 성적은 계속 저조하였다.


레이크프래시드(1980; 신혜숙), 사라예보(1984; 조재형, 김혜성), 캘거리(1988; 정성일, 변성진), 알레르빌(1992; 정성일, 이은희), 릴레함메르(1994; 정성일 14위, 이윤정), 나가노(1998; 이규현), 솔레이크시티(2002; 박빛나, 이규헌, 양태화, 이천군), 토리노(2006; 출전 못함), 밴쿠버(2010; 김연아, 곽민정)로 이어진다. 동트는 여명기가 뜸을 들였다고나 할까? 김연아 선수 등장으로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새로운 전기를 맞아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해준다. 김연아의 성적도 놀라운 성과지만, 김연아가 국제무대에서 맹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한 ‘피겨 퀸’으로 떠오르면서 어린 꿈나무들에게도 목표의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한국의 30여개의 실내빙상장에서는 ‘김연아 키드’들이 제2의 피겨여왕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자랑스런 한국 피겨스케이팅 만만세!

아쉬운 점은 남자피겨선수 양성이다. 50년 전에도 여러 남자선수들이 각축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여자 전용물이 되다니… 김연아의 코치인 브라이넌 오서도 사라예보 올림픽(1984)와 칼가리 올림픽(1988)의 은메달 선수였다. 남자 싱글, 페어스케이팅, 아이스댄싱에서도 메달을 석권할 남자선수들의 양성이 시급하다 하겠다. 남자 어린 꿈나무들이여, ‘피겨 퀸’에 도전하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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