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이책 vs 전자책

2010-03-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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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손글씨’가 무슨 뜻인가. 손으로 쓴 글씨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손으로 쓰지 않는 글씨도 있는가. 그렇다.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려서 글씨를 쓸 수 있다. 휴대전화에 엄지손가락으로 글씨를 쓸 수 있다. 그렇구나. 전에는 ‘글씨가 인격이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시대가 흐른 이야기일 뿐이다. 전자 글씨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데 무슨 불평이 있는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글씨의 개성은 찾을 길이 없는 게 허전하다.
예전에는 글씨 쓰기에 가지가지의 주문이 따랐다. 필순을 따라 써야 하고, 바르게 써야 하고, 예쁘게 써야 하고, 개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으로 생각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그 재주를 선망하게 되었었다. 걱정할 것은 없다. 한글의 글씨체도 다양하여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현대인이 택한 것은 글씨의 기능면이다. 빨리 정확하게 의사 전달을 하겠다는.

한편 ‘종이책’ ‘종이신문’이란 말도 새롭다. 이것들을 대신하여 ‘전자책’ ‘전자신문’이 있다. 아직 전자신문을 본 일이 없지만, 가끔 지하철 옆 승객이 전자책 읽는 것을 보았다. 부피가 알맞고 조작이 쉬워서 휴대가 간편하겠고, 책장을 넘기는 대신 버튼을 누르는 재미도 있겠다. 각종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우리 일상생활에 변화를 가져온다. 서서히 때로는 급격히 옛
것들이 물러나고, 새것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려고 새 기능을 배워 나간다. 그래서 앞으로 손글씨는 쓸데가 없게 될까. 컴퓨터 자판을 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글씨를 익히는 출발점이 되는가. 우리가 손글씨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자판을 쉽게 치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손글씨는 붓글씨와 함께 예술 작품으로만 남겠는가. 손글씨는 실용에서 벗어나 감상용이 되는가.


독서계에 전자책만 있다면 독서 의욕이 더 강해질까. 종이책들은 박물관 소장품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인가. 출판사업 경영자의 말을 빌리면, 전자책 이용은 종이책의 구매력도 올릴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의 이야기는 전자책 출현이 독서의욕을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중요한 이야기다. 어떤 모양의 책이거나 독서의욕이 없다면 무가치한 물건이 된다. 독서의욕은 독서력 향상의 기본이다. ‘너는 무엇을 먹고 자라니?’라는 질문에 어린이가 대답하였단다. ‘머리는 책을 읽으면서 자라고, 몸은 음식을 먹으면서 자라요’ 그는 머리와 몸의 영양소가 따로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가을이다. 독서의 계절이니 책을 열심히 읽자’라는 어른의 말에 어린이가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물었단다. ‘일년 내내 독서의 계절이 아닌가요?’글씨 쓰는 방법도 여러 가지고, 책의 모습도 다양한 시대에 살고 있음은 즐거운 일이다. 이토록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의 전환기에 살고 있음은 큰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새로 닥
쳐오는 기능이나 문화 물결에 맞서는 것이다. 직접 겪어보고 앞뒤 것을 비교하며 취사 선택하면서 일상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은 개인의 몫이다.

학교에서는 글쓰기와 글짓기 지도를 한다. 학생들은 일기와 편지를 손글씨로 쓴다. 고학년이 되면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서 글을 쓴다. 이렇게 기초 기능이 길러지면 그들은 이 시대에 적합한 기술을 습득할 것이다. 독서 교육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부터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책이란 재미가 가득 담긴 보물단지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그 첫 단계이다. 자녀와 가까워지는 방법은 공통의 생활 양식과 공통의 생활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첩경이라 하겠다. 또한 이 방법은 부모가 현대화하는 지름길이다. 자녀와 함께 자라는 부모상이 아름답게 이 시대에 부합하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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