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이민생활에서 한인이 더 무섭다?

2010-02-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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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희(취재 1부 기자)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사기사건이 많이 늘고 있다. 돈을 뜯긴 피해자들과 대화를 해보면 한결같이 사기친 사람이 아는 사람, 한 다리 걸러 아는 사람 등 대부분이 ‘지인’들로부터 낭패를 본 경우다. 그렇게 서로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한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피해 이야기는 늘 한 문장으로 끝난다. “이민생활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한인들이다”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
만 한인들 사이에선 유독 사기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의형제처럼 지내던 사람한테 투자했다가 고스란히 돈을 뜯기거나 평소 의지하던 집주인한테 전기세 바가지를 받는 등 ‘믿음과 신뢰’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한인들 중에 참 많다. 취재에서 만난 어떤 40대 중년 여성은 “동족인 한인들의 속을 참으로 알기 어려워 더 무섭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돈을 섞는 비즈니스는 안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하는 한인들 끼리 이제는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서로 뭉쳐야 하는 ‘타향살이’에서 나 혼자 잘살겠다고 동족들을 배반하게 되면 결국은 한인사회가 붕괴되는 불신의 씨앗이 된다.

사기 치는 사람들은 경기불황으로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소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단지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어디, 지금같은 상황에서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빠듯해진 살림을 도우려고 투잡, 쓰리잡을 뛰며 성실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은 돈이 남아서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아닐 게다. 다들 같은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생활할 때 더 좋은 사회도 만들어질 것이다. 힘들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한인들이 더 많아져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강한 한인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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