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봄을 기다리며

2010-02-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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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조선초기의 유학자 정도전은 그의 삼봉집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봄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이란 봄의 성장이며 가을이란 봄의 성숙이며 겨울이란 봄의 수장(收藏)”이라고. 우리 시대 최고의 수필가 피천득은 봄을 맞아 “민들레와 오랑캐꽃이 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런 봄을 사십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은 아니다. 더구나 봄이 사십을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녹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한다.”고 노래했다.

피천득이 아마도 불혹의 나이에 그런 봄의 감상을 적은 모양인데 봄은 쉰살, 예순 살, 아니 일흔을 넘긴 사람들도 죽지 않고 살아만 있으면 느끼게 되어 있다. 이때 느끼는 봄의 감정은 나이마다 다 따로 있다. ‘인생일장춘몽’이라는 말은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인생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 때의 덧없는 일이나 헛된 공상을 춘몽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말 말고도 봄날에 꾸는 꿈을 봄꿈이라고 한다. 행복하고 달콤한 것을 그려보는 꿈이 바로 봄꿈이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 꿈을 잘 꾸는 사람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다고 한다. 일본의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세계가 주목하는 일본전산(日本電産)의 창업자이다. 그는 1973년 가정집의 한 창고에서 전기모터회사를 창업하여 지금은 13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릴 만큼의 거대한 일터를 창
출하였다. 그는 일본판 벤처 신화를 일궈낸 사람이다. 일본전산은 “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회사이다. 일본전산, 모든 것은 꿈을 위해서!”라는 제목의 사명선언서는 꿈에서 시작하여 꿈으로 끝난다.


“꿈은 우리의 원점, 꿈은 우리의 원동력, 꿈은 우리의 미래 세계의 꿈, 사람들의 꿈, 그리고 우리들의 꿈, 꿈을 품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정열과 발상이 싹터 세상에 없었던 기술과 성능을 가진 제품이 실현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꿈을 위해서, 꿈이 있는 한, 일본전산그룹은 도전할 것이다. 세계와 사람들의 내일을 위해 세계 최초, 세계 최고를 추구하는 기술과 제
품으로 쾌적한 사회를 만드는 데 계속 공헌할 것이다.” 기업이든, 학교든, 교회이든, 정부든, 어느 일터이든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비결은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불세출의 영웅 요셉의 경우 꿈을 지닌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 준다. 어린 시절 그는 형제들로부터 ‘꿈쟁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였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보고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Dreamer)’가 오는 도
다.” 어린 시절부터 ‘꿈쟁이’라 불렸던 그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계속하여 꿈꾸는 자로 살았기에 노예 신분에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제 겨울은 다 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턱 앞에 다가오고 있다. 봄은 새로운 시작이다. 봄날에 씨앗을 제대로 뿌려야 가을에 풍성한 작물을 거둘 수 있다. 무엇을 심을 것인가? 어떻게 심을 것인가? 얼마나 심을 것인가? 봄이 오기 전에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봄이 오면 즉시 파종해야 한다. 신은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다. 봄을 잘 맞이하라. 그래야 풍성한 가을이 될 것이고 창고에 수장된 것이 가득찬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봄은 꿈을 꾸는 계절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있다. 벌써 밖에는 요즘 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 새로운 대지의 기운을 느낀다. 아무리 눈보라가 치고 어두운 겨울의 그
림자가 우리를 막아섰어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봄 앞에는 그 추운 겨울도 당해내지 못한다. 어두움이 지나면 반드시 동이 트게 마련이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봄이 없었으면 우리가 무슨 희망을 바라보며 살 것인가.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살 수 있는 것은 겨울 뒤에 오는 새봄이 있고 고통뒤에 새로운 희망과 꿈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은 한바탕 봄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허사라도 한번 봄 꿈을 크게 꾸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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