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발소

2010-02-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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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보기 싫게 자란 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깎아 주는 곳이 이발소다. 가위를 들고 머리카락을 세워 자르는 이발사 손가락 사이의 머리카락을 보면 머리카락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 때문에 자랐을까? 바람에 흩날릴 것을... 작은 머리에서 똑같이 자라는 머리카락의 길이가 저마다 다르다. 길이가 길수록 바람에 더 흩날리던 저 머리카락들, 자라는데 무슨 목적이 있었을까?

비가 오면 제일 먼저 비를 맞으며 빗물을 챙기는 저 머리카락들, 사람의 신체에서 물을 제일 많이 보듬어 안고 얼굴로 흘러내리는 물을 막고 있는 저 머리카락들. 우리는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면 이발소를 찾아 간다. 보이는 것을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세상살이에는 반드시 자르는 곳이 있고 잘라야 되는 것이
있다. 도리를 위해서다. 도리는 정해놓은 의무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도 더욱 더 날이 잘 선 칼이 있어 잘못된 생각을 골라 잘라서 사람을 인간으로서 가야 할 행선지를 알려주고 그 길로 안내한다. 양심이다.

양심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한 세상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결심이 간절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참 많다. 세상살이에서 이득을 먼저 챙기는 일이라던가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는다던가, 내야 할 세금을 교묘한 방법으로 피해가려는 일, 내 병을 내가 다스리는 일, 내 입을 내가 다스리는 일, 내 욕심이나 내 욕망을 내가 다스리는 일,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 내 마음에 꼭 들도록 내 자식 키우는 일, 처음의 사랑이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도록 뜨겁게 지키는 일, 등등. 한 세상 살다가
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들어 있는 이런 잡다한 일들에서 명쾌하게 벗어나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훈도하고 교육을 시키기 시작한지가 불교에서는 4천년이 넘었다. 기독교에서도 2천년이 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지구 구석구석 여기저기에서 고승들이나 목회자들이 대장경이나 성경을 들고 침이 마르도록 훈도하고 가르치고 있으나 자를 것을 자르지 못하여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정이나 사회란 그릇에 흘러넘친다.


공자 맹자가 세상을 다녀갔으면 무얼 하고 선지자나 도사가 세상을 다녀갔으면 무얼 하나. 인간은 바뀌지가 않았다. 아니 바뀔 가능이 없는가 보다. 그러니 정확한 대답은 아마도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일 것이다.피어나려는 꽃봉오리 보다는 만개한 꽃을 좋아하고, 희망보다는 소유하기를 바라고, 용기를 가
지고 전진하기 보다는 완성을 바라는 사람의 마음은 재미없는 인간의 욕심이다.욕심은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 십자가를 진 사람이 평화와 행복을 말 할 수 있고 십자가를 진 분이 유일한 우리의 신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신(神)이란 한문의 글자를 볼 때마다 신통하다는 생각을 한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아주오래 전에 갑골문자로 시작한 한문의 신(神)이란 글자를 보면 거기에 이미 십자가가 들어 있다.

입 구(口)안에 십자가, 하느님 말씀 안에서 십자가를 진 이야 말로 진짜 유일한 신이라고 고대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세상의 죄악을 자르라고 말씀하시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분은 누구일까? 머리카락을 다듬으려고 이발소에 가서 앉으니 멋대로 자란 머리카락이 이발사 손에 들린 가위로 사정없이 잘려 나간다. 학교나 절이나 교회에 가서 앉으면 무엇이 잘려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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