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침 흘리며 쓰는 기사들

2010-0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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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취재 2부 차장)

한국의 한 영화잡지 편집장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사”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기자들이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과 인터뷰를 하고 나서는 ‘침을 질질 흘리며’ 쓴, 개인적인 애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기사를 말한다. 얼마전 만난 지인이 기자가 쓴 우리술에 관한 글을 읽고 “기자가 정말 막걸리를 좋아하는 게 보여서 재밌었다”라고 칭찬(?)을 해 줬는데, 아마도 그런 유형의 축축한 글이었나 보다. 사실 잡지가 아닌 일간지 면의 대부분은 소위 6하 원칙대로 작성해야 하는 스트레이트 기사기 때문에 건조하기 마련이고 기자의 개인적인 애정이 반영되는 글을 쓰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풍물패 ‘노름마치’ 공연 리뷰는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침을 흘리며 쓴 기사다.

지난달 30일 플러싱타운홀의 설 페스티벌 공연을 본 후 정말 감동받았다. 현장에서 느낀 신명과 감동을 어떻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음 공연을 찾도록 멋지게 쓸 수 있을까 고심했었다. 한정된 지면과 짧은 지식, 그리고 부족한 표현력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도 다음날 두 명의 독자가 공연 문의를 해와 나름의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솔직히 말하면 기자의 음악적 취향은 절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식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쇳소리는 즐겼어도 꽹과리와 징소리는 무지 싫어했다. 대학 시절 데모 때도 풍물패가 바람 잡는다고 뚱땅거릴 때 시큰둥했고, 경기장에서 꽹과리 치며 응원하면 정말 신경이 거슬렸다.


전통 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미국에 온 이후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전통음악 공연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 국악 단체들의 공연을 보면서 우리 소리에 대한 귀가 트기 시작했고, 강은일과 해금 플러스, 들소리, 허윤정과 토리 앙상블 등 창조적인 뮤지션들로부터 정통 음악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발견했다. 4일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무형문화재 82호를 찾아서(Intangible Asst. 82)’ 관람은 전통 타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또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됐다. 호주의 유명 재즈드러머가 무속 연주자 김석출 옹의 장구 CD를 듣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7년이나 한국을 오가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근원은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가 쿠바의 전통 음악인을 찾아가는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었지만 절대로 그 작품에 뒤지지 않는 감동을 안겨줬다. 이 영화가 혹시 뉴욕에 정식 상영되어 리뷰를 쓸 기회가 생긴다면 기자는 아마 침을 한말은 흘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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