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열정과 냉정 사이

2010-02-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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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2일, 카리브해 연안의 최빈국 아이티에 최악의 지진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지구상 최빈국 중 하나인 것도 비참한데, 12만이 넘는 사망자와 전 인구의 3분의1이 넘는 300만의 피해자를 낸 참담함에 전 세계가 함께 울었고, 그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미국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뿐 아니라 할리웃 스타들까지 나서 ‘Hope for Haiti’라는 TV 특별 생방송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는 등 뜨거운 인류애가 발휘된 지난 3주간이었습니다.

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언론과 단체, 기관, 교회가 기꺼이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시일반 모아서 보내는 후원금은 물론이거니와, 직접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도 언론을 통해 간간이 소개되어 우리 가슴을 훈훈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일말의 우려를 갖는 것은 재난 지역의 긴급 구호활동이 잘 짜여진 시스템 하에서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전문 인력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실행돼야 하는 프로페셔널한 활동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아이티를 도울 준비를 하거나 현지로 떠나는 많은 단체, 팀들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긴급 구호활동에 대한 상식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 긴급 구호활동은 단순 빈곤상황이 아닌, 생사의 갈림길이란 극단적 상황을 경험한, 비정상적 심리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게 기본 상식입니다. 이들은 자극에 민감하고, 감사보다는 분배 불평 등에 대한 소외감, 실망감을 강하게 표출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둘째, 긴급 구호활동은 의료활동, 식량, 식수를 비롯한 기본적인 생필품 분배, 임시주거 제공을 위한 난민캠프 운영, 사회 인프라 임시복구 등의 여러 영역으로 구분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영역에 기여할 수 있는 지를 사전에 자체 평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셋째, 긴급 구호활동은 유엔 또는 재난국의 비상대책 및 통제 시스템을 통해 일정한 원칙과 약속 하에 움직이는 협력활동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활동 등록, 활동 계획서 제출, 활동 영역 배정, 현장 안전 확보 등이 기본입니다.

넷째, 긴급 구호활동은 현지 네트웍 확보가 필수입니다. 의료 활동은 현지 병원 또는 의료팀과의 연결이 없으면 대상자조차 확보할 수 없으며, 생필품 분배 역시 네트웍 없이는 중복 분배나 분배 소외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그저 열정만을 앞세워 활동하다가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고, 소요사태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섯째, 긴급 구호활동은 장·단기 활동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인명구조는 촌각을 다투지만, 생존자들에 대한 구호활동은 그들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 삶의 터전을 마련할 때까지 도와야 효과를 발휘합니다.


우리는 유독 가슴이 뜨거운 민족입니다. 그 열정은 적극적인 행동을 낳습니다. 물론 그 적극성이야말로, 60여년 전 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때로는 열정이 지나쳐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만 사례도 많습니다.

구호활동가들 사이에 회자되는 아주 명쾌한 문장이 있습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정하게…, 심지어 때로는 냉혹하게…’ 그 이유는 우리는 여기서 생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티에서의 긴급 구호노력이 이목을 끌기 위한 활동이 아닌 진정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준서 /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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