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겨울 다 가면 무엇이 또 올까

2010-02-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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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시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돈이 많아 돈이 남아도는 사람이나 돈이 없어 하루 세끼 밥 먹고 살기조차 힘이 드는 사람이나 모두 무작정 돈 벌기에 한눈을 팔다가 하루한달 일 년을 영문도 모르고 다 놓쳐 보내고 새해의 정월,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다.

두터운 내복을 입어도 따뜻해지지 않는 마음으로 건성건성 한 계절을 또 지낸다. 나그네란 아무런 감정을 풀어놓지 않고 그저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나그네란 시간이 가도 아무런 술렁임 없이 타향에서 그저 돈만 벌면 되는 것일까?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보았다. 겨울바다. 추운 겨울바다위에서도 요트들이 닻을 내리고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술렁이고 있다. 아, 파도가 있는 곳에는 술렁임이 있구나! 그런 술렁임이 보고 싶어 창문을 몰래 빠져나온 전등 빛은 뱃머리에 매달려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어슬렁거리다가 다음 불빛이 물가에 닿자마자 파도에 술렁이는 축제 같은 것을 한 갈퀴 긁어서 깊은 수심으로 달아나 숨어버린다. 밀리고 밀리는 파도를 바라보니 파도에도 고랑이 있고 이랑이 있다. 파도의 노동, 고랑을 파 놓아야 그 사이로 공기가 흐르고, 햇빛이 누었다가 스며든다고 바다는 파도로 고랑을 파기에 바쁘다. 파도의 노동을 바라보는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나에게 파도로 보여주는 바다 세상의 술렁임을 갯내음을 섞어서 안겨준다.


그렇다. 여인이 얼굴이 하얗고 얼굴 살이 보송보송한 남자를 보면 긴장은 되지만 마음에는 술렁임이 없고 파도처럼 주름살이 많은 사람을 보면 왠지 마음이 술렁이면서 편안해진다. 파도는 아무런 격 없이 파도에 겹치고 섞이는 관용이기 때문일까?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며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살면서 한 순간이라도 마음에 술렁임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축제다. 누구를 바라보던 바라보는 눈빛에 술렁임이 있다면 그것은 교감의 이랑이고 축제 전야의 환희다. 살기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교감을 위한 마음의 술렁임이 없거나 너무나 조용한 이민의 여정,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지니고 있어야 할 진정한 흥분이 돈도 제대로 벌어지지도 않는 노동과 즐겁지도 않은 노동의 시간에 다 몰수되어 간다.

산은 내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 강은 내 앞에서 흐르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이 나를 위해서 오지 않는다. 나에게 흥분되는 술렁임이 없다면 모든 것은 있으되 무감각일 뿐이다. 이 겨울이 다 가면 무엇이 또 올까?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기에 제대로 벌리지도 않는 돈에 발목을 잡혀 마땅히 있어야 할 작은 축제마저 다 빼앗기고 물살에 살이 닳아가는 징검다리 돌로 살고 있을까? 올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음에 술렁임이 있는 사람들은 내리는 눈
을 보고 흥분하고, 술렁임이 없는 사람들은 눈 치울 걱정을 태산같이 한다. 봄은 온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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