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그러진 문화

2010-02-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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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석 (정신과 전문의/한미문화연구원장)

할로윈때마다 느끼는 것은 무서운 형상들 보다는 수퍼맨, 스파이더 맨, 천사 등과 같은 건전한 형상들을 사용하면 어린이들의 정서발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점이다. 몇일 전에 한 젊은 여인이 우울증이 있어 남편과 같이 상담 치료를 받으러 왔다. 그 여인은 같이 온 남편을 계속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다.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이분이 남편입니까, 친 오빠입니까?” 그 여인은 멋적은 미소를 지으면서 정식으로 결혼한 남편이라고 해명했다. 교제할 때 오빠라고 부르던 것이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요즘 한국 드라마를 보면 어떤 남자가 친오빠나 친척오빠인지 알 수가 없다. 교제하는 모든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런 풍조가 생긴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한국은 유교전통으로 인해 얼마 전까지도 ‘남녀칠세 부동석’을 외치던 문화였다. 미국 문화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남녀교제가 자유스러워졌으나 아직도 남의 눈치를 봐야하는 심리적 압박감을 계속 느끼지 않을
수 없어 그 압박감을 감소시키려는 해결책으로 이런 현상이 생기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자기 오빠와 단 둘이서 다닌다고 해서 눈살을 찌푸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남을 기만하기 위한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왜 떳떳하다고 느낄 수 없는 행동을 해야 되나. 이런 현상은 ‘오빠’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본다. 자기 어머니 친구는 모두 ‘이모’가 되어 버렸고 가게에 물건 사러 가면, 나이든 남자는 ‘아버지’가 되고 여자는 ‘어머니’가 된다.


나는 이런 딸이나 아들을 둔 일도 없는데 말이다. 만약 아내가 의부증이 있다면 내가 바람깨나 피운 남자로 보지 않겠는가. 이것은 상대방이 친근감을 느끼도록 환심을 사려는 행동 중의 하나이다. 한국 젊은이들은 모두 대인공포증에 걸린 것인가? 대인공포증에 걸린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대하게 되면 불안해지고 두려워한다. 구멍가게 주인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상대방이 듣고 좋아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것도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친밀감을 만들기 위한 수단일뿐이다. 아니면 대인공포증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인가?

한국의 가족중심의 미풍양속과 건전한 문화는 다 어디로 갔는가?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보자. 부모를 중심으로 한 ‘효’및‘가족중심 사상’과 사람을 존중하는 ‘인도주의’ 사상이 물질주의에 밀려나버려 돈과 본능적인 욕구충족을 위한 행동이 가장 우선권을 차지하고 부모와 윗사람을 존중하는 풍조는 사라져 버리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강되고 있는 한국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한가족인 양 행동한다고 해서 대인공포증이 해결되지 않는다. 대인공포증이 있으면 정신과 의사한테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그러나 한국의 신세대 젊은이들이 모두 대인공포증에 걸렸을 리가 없다. 이것은 잘못 시작된 유행이 마치 새로운 문화인 양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데서 온 문제이다. ‘요즘 젊은이들 다 그런 모양이다’ 라고 삐뚤어져 가는 풍속과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뿌리가 깊이 박히기 전에 속히 바로 잡아야 된다.

두리뭉실하게 모든 사람들을 자기 가족처럼 ‘오빠야’ ‘이모야’ 부르면 사회질서가 무너진다. 가족과 남은 분명히 구별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야 사회에 질서가 잡힌다. 내 가족은 가족대로 안에서 기강을 바로 잡아야 되고, 남은 남대로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존중해야 된다. 문화는 변천하나 병적이 아닌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된다. 그 책임은 그 문화권 구성원 각
자에게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것을 명심하고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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