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죽음을 한국에 알리지 말아다오”

2010-02-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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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5년 전에 매형이 죽었다. 2년 전에는 또 어렸을 때부터 친구처럼 같이 자랐었던 사촌형이 죽었다. 한국에 나가 조의를 표했어야 했는데 한국에 나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례에 참석할 수 없다고 전화로 사과했고, 용서를 빌었다. 한국에 가지 못한 대신, 조의금만 보냈다. 하지만 한국에 직접 나가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데 대한 나의 죄책감은 심했다. 이런 죄책감을 한국에 있는 형제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 아내한테 내가 죽으면 한국에 있는 내
형제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내 죽음을 전해 듣고 한국에서 뉴욕에 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내 죽음을 들은 이상, 이곳에 오지 않을 수도 없을 테고... 이런 고통과 갈등을 형제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 형제에게 나 죽거든 내 장례에 참석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아내에게는 내가 죽고 난뒤, 3-4개월 후 쯤에 나의 죽음을 한국에 알려주라고 부탁했다.

얼마 전에 누나한테 전화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유서를 써놓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유서 같은 것을 써놓아서 무엇하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내가 웃으면서 하지만 심각하게 누나에게 빨리 유서를 써놓고, 그리고 묘 자리도 만들어 놓으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하더니만, 누나가 옛날 사람들이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란 말을 자주 했었는데 이제 나이가 77세가 되고 보니, 인생은 일장춘몽이란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도 일장춘몽이란 말에 동의하면서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아내하고 자식들에게 내가 죽거든 내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만약 ‘나’라고 하는 영혼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넓고 광활한 이 우주 방방 곳곳을 자유로이 훨훨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지 결코 비좁은 무덤에 영원히 갇히고 싶지 않아서 이다.

만약 무덤을 만들어 놓으면 아내나 자식들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두 번은 내 무덤에 찾아와서 성묘를 해야만 할 의무를 갖는다. 무덤에 찾아와야 한다는 그런 귀찮음을 주지 않기 위해서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만약 무덤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자식들이야 성묘를 오겠지만 손자, 증손자 그리고 후손들은 내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를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한테 무덤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죽거든 병원에서 즉시 화장터로 가서 화장하라고 했다. 그리고 넉넉하게 날짜를 잡아 몇 명의 친한 친구들만 불러서 간단하게 장례를 치루라고 했다. 화장하면 장례비를 엄청나게 많이 절약할 수가 있다. 절약된 장례비용을 손자 손녀 교육자금으로 저금해 두라고 부탁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인간은 어느 땐가 반드시 죽게끔 돼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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