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인슈타인의 편지

2010-0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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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자필 편지 한 통이 최근 발견되어 지난 15일 런던 경매시장에 나와 비싸게 팔렸다. 그는 편지에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적었는데 지금까지 그의 종교관이라고 세상에 알려졌던 것과는 사뭇 달라 흥미롭다.

아인슈타인이 누구인가? 그는 상대성 이론을 발표함으로써 뉴턴 이래 200년간 물리학계의 경전으로 되었던 ‘거시(巨視)세계의 저속도(低速度) 운동’을 지배하였던 뉴턴 역학에 종지부를 찍고 인류가 그때까지 풀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오랜 의문을 풀고 빅뱅 이론을 도출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운 천재 과학자이다. 아인슈타인은 1954년 1월3일 친구인 독일인 철학자 에릭 구트킨트에게 이 편지를 보냈는데 그는 종교의 믿음을 ‘유치한 미신’으로 치부하였다. 이어서 “신(神)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낸 것이며 성경은 훌륭하지만 매우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다. 그 자신 유대인이며 한때 이스라엘국 대통령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한 바 있는 아인슈타인은 “유대인
은 선택받은 민족이 아니라 다른 민족과 다를 바 없다”고 쓰고 유대교도 ‘어리석은 미신’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라고 술회한 바 있는 아인슈타인의 어록을 인용하며 “인류최고의 과학자도 종교를 인정하였다”고 주장. 기독교 선전에 이용해 왔었다. 그러나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 “기독교는 툭하면 유명인들을 들먹이며 종교적 관점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뒤집어 씌웠다” 면서 과학자는 증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때문에 겸손한 표현으로 신을 얘기한 것뿐이며 아인슈타인의 삶은 신에 대한 부정, 신을 아예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는 과학자의 인생이었다”고 그를 회상하였다.

새해벽두 서반구의 가난한 섬나라 아이티를 강타한 대지진은 30여만의 인명을 앗아갔고 나라를 폐허로 만들었다. 물질세계의 운동법칙에 따른 자연의 무의미한 폭력이 빚어낸 이런 참사에 대해 미국과 한국의 일부 기독교 목사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듣게 되면 과연 아인슈타인이 맞는 말을 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제공하는 대량의 정보는 시간이 갈수록 종교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생물학과 유전공학의 발전은 생명의 비밀도 파헤치고 있고 신의 영역이라는 생명의 창조도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에서 밝혀진 아인슈타인의 종교에 대한 견해는 철학과 신학계에도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위대한 과학자의 비판을 계기 삼아 종교도 맹목이 아니라 이성으로 여과되고 과학의 지지를 받는 합리적 윤리규범으로 무장한 도덕운동으로 거듭나야 할 것 같다. 미신적 기복신앙과 물신숭배로 타락한 기성교회에 대한 반동으로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계 일각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민중신학을 심화, 발전시켰다는 이른바 ‘떠돌이 신학’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들은 온 세계의 떠돌이 소외계층을 보듬어 안고 사랑과 나눔의 예수의 참 정신을 체화(體化)하고 반전. 평화. 민주 통일 운동에도 역동적으로 참여하면서 개혁운동을 선도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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