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승풍파랑(乘風波浪)

2010-0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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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승풍파랑(乘風破浪)’은 바람을 타고 물결을 헤쳐 나간다 혹은 뜻이 원대하다는 말이다. ‘장풍파랑(長風波浪)’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 송나라에 종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무예가 출중하였다. 그가 14살 되던 해에 그의 형이 혼례식을 하는 밤에 떼강도가 들었는데 그 강도들을 종각이 제압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송나라가 지금의 베트남인 임읍국을 정벌하러 갈 때 종각이 부관으로 참전을 하였다. 이 전투에서 임읍국이 코끼리 떼를 앞세워 공격을 하자 송나라 군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때 종각이 병사들을 사자처럼 꾸며 춤을 추게 하니 코끼리떼가 도망을
치더라는 것이다. 종각은 그렇게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가 어릴 때 그의 숙부가 장래 희망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원승장풍파만리랑(願乘長風破萬里浪), 즉 “거센 바람을 타고 만리의 거친 물결을 헤쳐 나가고 싶다”고.

승풍파랑은 위기를 당할 때는 정면승부를 하라는 말이다. 먼 곳에서 파도가 밀려오면 바람을 타고 가서 정면에서 파도를 깨야 한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이 높은 파도를 만났을 때 그 파도를 피하려고 하다가 배의 측면으로 파도를 만나면 그 배는 전복하기가 쉽다고 한다. 그래서 유능한 선장은 파도를 만났을 때 오히려 전진! 앞으로!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는 헤리퍼드 종(種)의 소가 있는데 이 방목소가 혹한을 견디는 내한성이 굉장히 강한 걸로 소문이 나있다. 그래서 이 소를 사람들이 연구를 했다고 한다. 다른 소들은 밤에 예기치 않은 찬바람이 불어 올 때 버티다 버티다 못 견디면 가장 지방이 많은 엉덩이 쪽으로 찬바람을 맞다가 조금씩 조금씩 엉덩이 부분부터 얼기 시작해서 그만 자기도 모르게 얼어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헤리퍼드 종은 뿔을 바람이 센 쪽을 향하고 서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 뿔로 찬바람을 이겨내기 위함이다.
엉덩이를 가지고 어려움에 대처할 때는 분비하는 호르몬 자체가 방어적인 호르몬이 분비되고 그 방어호르몬은 몸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것이 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뿔을 가지고 들이대면 뿔은 공격호르몬을 분비하게 하는데 공격호르몬은 심장박동수도 더 뛰게 해주고 몸의 비상 호르몬을 가동시켜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활용해 추위를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인생에 어떤 시련이 왔을 때 등을 보이면 이길 수 있는 힘이 약해진다. 그러나 정면으로 서서 맞대결을 하면 우리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더 발휘되는 법이다. 스위스의 유명한 신학자 폴 트루니에의 글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상실, 노년, 고통스러운 질병, 불구, 혹은 배우자의 죽음 등을 감당할 용기가 있을까 하고 항상 걱정한다. 불행에 처해 있을 때 왜 용기가 필요한가. 그것은 용기있게 직면하는 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것 보다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아무도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스스로가 자신을 죽일 뿐이다. 인생은 모험으로 사는 것이다.”

2010년은 여러모로 정말 힘든 해다. 그러나 우리 앞에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승풍파랑의 기개로 맞서 나간다면 그것을 우리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어렵고 힘들다고 의기소침해 하거나 기가 죽고 한다면 더욱 절망적인 상황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파멸이요, 죽음뿐이다. 우리 옛말에 호랑이 굴속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남는다고 하였다. 무섭다고 뒤로 물러서는 게 아니라 자신감을 가지고 정면으로 맞서서 승부를 해야 오히려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 지옥같은 아이티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수많은 난민들이 가족과 이웃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고통과 맞싸우고 있다. 삶에 대한 용기와 도전정신을 그들이 버리지 않는 한 구석구석에서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 피어오를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 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승풍파랑의 정신을 우리가 삶에 적용할 때 아무리 어두운 칠흙같은 터널 속에서도 한가닥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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