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회통합 위원회

2010-0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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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한국정부는 사회통합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사회가 통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통합의 방안을 찾자는 취지일 것인데 듣는 순간부터 고개가 기웃거려졌다. 관제(官制) 통합이 과연 가능하다고 믿는 것인지? 혹시 나와 다른 의견은 잘못된 의견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양(多樣) 속의 통합’이 민주주의의 방향이라는 것을 잊은 것인지? 통합이라는 것이 제도
상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의문을 갖자면 한 없이 나열할 수 있는 이 독특한 위원회를 정부가 만든 의도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세계 인종시장 같은 미국은 통합에 성공한 예이다. 복합인종, 복합문화라는 대전제 아래 여기에 모여든 각 인종이 자기의 것을 내놓고 사회는 이를 포용하여 통합을 이루었다. 공헌과 포용, 곧 내 것을 내주고 남의 것을 껴안는 것이 통합의 지혜이다. 영국계 이민은 자유사상을 내놓고 그 법제화를 통하여 미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았고, 아일랜드계는 기독교 신앙을, 독일계는 우수한 교육제도를, 이탈리아계는 음악과 석조 건축법을, 스페인계는 견고한 가족제도를, 유대계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구열을, 동 유럽계는 춤과 봉제기술을, 중동계는 흥행 면에서, 인도계와 중국계는 테크놀로지와 컴퓨터 개발에서 공헌하였다는 말을 듣고 있다. 한국계는 아직 본격적인 이민의 역사가 짧아 미국 사회에 무엇을 공헌하였는지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


미국사회의 대통합 원칙을 요약하면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 차이점을 거부하지 않고 활용하는 아량, 다른 색깔도 조화에 따라 고차원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모자이크(mosaic)이론, 맛이 다른 채소들이 섞여 더 좋은 제3의 맛을 창출할 수 있다는 샐러드 볼(salad bowl) 이론, 서로 다른 소리들이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 등이다. 사회 통
합은 정치적 묘수풀이나 강한 리더십의 등장이나 법과 제도의 개선에 있지 않고 마음을 여는 데에 있다. 집단이기주의가 흉용하는 한 통합은 어렵다. 인종, 문화, 종교, 전통, 지방색 등의 벽을 극복해야 통합이 가능하다.

존 스타인백의 말대로 미국인, 미국문화란 영원히 형성되는 성격을 가졌고, 한국인 한국문화 하듯이 어떤 고정된 미국인 미국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을 ‘영원한 혁명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도 부단히 고치고, 계속 바꾸고, 새롭게 창조하고, 새 사람들을 맞아들이고, 새 전선(new frontier)을 찾아 쉴 새 없이 전진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메리칸 인디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민들로 시작한 나라이다. 이 땅에 들어온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제각기 자기의 것을 내놓아 하나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를
가꾸어가는 것이 미국 시민이 되는 의미이며 대통합의 비결이기도 하다.

며칠 전 ‘마틴 루터 킹의 날’을 지냈다. 한 개인의 이름을 들어 국경일로 한 것은 킹 목사뿐이다. 워싱턴과 링컨도 두 사람의 생일을 묶어 ‘대통령의 날’로 하였다. 흑인인 킹 목사의 위치를 그만큼 크게 보는 이유는 그가 미국에 사는 모든 인종의 평등과 자유를 위하여 살고 죽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킹 목사는 “미국은 이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표본이었던 것이다. 그는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가졌고 부조리와 불의와 폭력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다. 바위에 계란 던지기와 같은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빈손으로 약자들을 데리고 전진하였다. 워싱턴 대행진 때 그는 “나는 꿈꾼다.”고 외쳤다. “나는 꿈꾼다. 내 아이들이 피부의 색깔이 아니라 품성과 인격으로 평가될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꿈꾼다. 이 나라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의 천국이 되어 함께 일하고 기도하는 평화의 동산이 될 것이라고... 나는 꿈꾼다. 낮은 골짜기는 돋워지고 높은 언덕은 낮아지고 황무지가 평탄해지며 하나님의 영광과 공의가 두루 펴질 날이 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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