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

2010-01-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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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뉴욕한인교사회 회장)

어느 화창한 날, 나는 길을 걸었다. 높은 하늘,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지저귀는 새들과 꽃님들이 방긋 웃는 미소를 감상하면서 잠시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갔다. 비록 몸은 푸르름이 가득한 뉴저지의 어느 행복한 풍경 안에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우리 아이들 (학생들) 생각뿐이었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긴 거울이 언제 지나가나 하고 기다리다 보면 봄도 덩달아 훌쩍 지나가 버리는 듯하다. 너무 짧아서 어떤 때는 봄이었는지, 아니면 겨울에서 여름으로 그냥 넘어간 건 아닌지 모를 정도다.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어렸을 때는 “언제 어른이 되어서 부모님께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하고 갈망하곤 한다. 그런데 사실 어른이 되어서 알고 보면 기대만큼 이상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나이에 책임을 져야 하는 현실적인 시간일 뿐인 듯하다.


내 딸 한솔이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I don’t want to grow up. I want to stay a little girl for a long long time.”
나는 우리 한솔이 마음이 이해된다. 지나고 보니 어린 시절이 제일 그립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아이들과 보내는 내 직업이 좋다. 아이들 덕분에 나도 덩달아 항상 어린아이인 것 같고, 아직은 그렇게 때 묻지 않은 세상에서 사는 것 같아서 행복하기까지 하다. ‘Living the Good Life’의 저자 Helen Nearing은 이렇게 말한다. “하루 3분의 1은 열심히 땀 흘려서 일하고, 3분의 1은 좋은 책을 읽고, 또 나머지 3분의 1은 남을 위해 봉사하라. 이것이 참되고 좋은 삶이다.” 라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땀 흘리는 일을 중노동이라고 하고, 저소득층들이나 하는 일이라 비하한다. 그저 편히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두드리는 일, 부하 직원을 부리는 일이 능력 있는 사람의 직업이고, 성공으로 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일상 중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팔자 좋은 사람들이 누리는 사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면 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할까? 명예, 명품, 체면, 자존심, 외모 지상주의, 학벌, 재산, 자식자랑, 직장과 직급 자랑, 인맥, 심지어 어느 종교 단체에 출석하며 무슨 직분을 가지고 있는지 까지도 현재의 삶을 사는 능력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기의 위치와 능력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한다. 그러는
사이 어린 시절 누렸던 축복, 그 순수함은 어느새 추억 속에 묻혀 가는 것 같다.이렇게 어른이 되면 왜 사람들은 어린 시절 때 간직했던 순수성과 꿈을 잃게 될까? 우리 딸, 한솔이 심정을 나는 더욱더 이해한다.

오늘도 감사하며 소망을 담아 기도한다. “순수한 마음, 오염되지 않은 생각을 오래오래 간직하게 해주세요!” 라고.어린아이들과 삶을 보내는 이 특권을 주신 신께 나는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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